[제2회 세명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제2회 세명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세명일보
  • 승인 2019.05.07 21:00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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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수필부문]김 종 오 -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환영(幻影)

 

 

 

 

 

 

 

 

 

당선소감 - 김 종 오

“수필은 서른다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 선 사람의 글이요,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다” 피천득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응모해 보았습니다.
감지 않은 머릿결 같은 두서없는 글에 과분한 기쁨을 주신 세명일보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병상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절절한 마음으로 썼던 글이었습니다. 아픈 부모님의 변을 맛보며 쾌유를 기도한 유검루의 지극한 효심을 가히 비교할 수는 없으나, 그 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어머니의 황금빛 변을 확인하고 췌장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학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오진 확진을 받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월의 문턱에서 마을 회관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환영을 떠올렸는데, 오늘 마을 회관에서 직접 전화를 받는 현실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오지만 불행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프고 불행한 소재가 아닌 행복한 글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선작 -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환영(幻影)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팔순 때 불렀던 어머니의 애절한 노랫가락이 저물어 가는 서산자락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보행기를 밀고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회관까지 가는데도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30분이 걸린다. 이만큼이라도 좋으니 고장난 벽시계처럼 세월도 여기에서 딱 멈췄으면 좋겠다는 삶에 대한 찐한 애착감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기억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고장난 벽시계’를 18번으로 노래 부르곤 하셨다.
우수(雨水)가 지났는데도 이상기온은 연일 계속되어 오늘도 북극한파를 몰고 오고 바깥기온은 영하 15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팔구십을 넘나드는 노인들의 다(多)인실 병실 창가에는 환자의 쾌유를 비는 난초가 바깥 기온을 무색해하며 꽃을 피우고 있다. 얼핏 보아도 치매와 중풍으로 회복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노구(老軀)의 환자들뿐인데, 어느 노인의 쾌유와 소생과 희망을 기원하는 것일까. 절기도 모른 채 창가에 피어난 꽃은 의식 혼미한 노인들의 생사를 희롱하는 듯하다. 설을 앞두고 갑자기 옆구리가 많이 아프시다는 어머니는 MRI, CT등 정밀 검사를 받고 같은 병실에 입원을 하셨다. 누구도 상상 하지 못했던 청천벽력과도 같은 췌장암 3기라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다. 더군다나 연세가 많고 기력이 쇠하여 수술 등 치료적인 방법은 없다고 하였고, 그저 남은 생(生)은 통증이나 관리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어찌할 수도 없는 이 절박한 상황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당신께서 무슨 병에 걸리셨는지도 모른 채 세월이 좋아져서 죽기조차 쉽지 않다고 말씀을 하신다. 여느 때처럼 툴툴 털고서 퇴원하리라는 희망과 삶에 대한 애착이 묻어있는 말씀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노랫가락처럼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어머니의 세월은 고장도 없이 생의 종점을 향해 무심히도 흘러가고 있다.
한파 속에서도 봄기운은 어깨너머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시골의 오일장에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어머니 컨디션이 좋으시면 모시고 장 구경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침에 드신 밥 한 술을 소화하지 못하고 다 토하셨다. 혼자서 장 구경 가는 길이 마음 아프지만 어머니 좋아하시는 배추전을 사려고 장터를 찾았다. 냉이, 고들빼기, 은달래가 펼쳐진 장터 입구는 할머니들로 분주하고 그 속에서 예전 어머니께서도 봄나물을 내다 파셨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잃었고, 복학을 포기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로 방황하며 세상을 비관하고 있었다. 그 때 새벽마다 눈물 흘리며 애간장이 녹아내렸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을 단장(斷腸)의 상처를 짐작 할만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께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며 늘 나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셨고, 나가서 무엇이든 의지대로 해보라며 나물 팔아서 푼푼이 모은 그 돈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그런데 지금 불치의 병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니 앞에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어메(엄마) 걱정하지마소 곧 나아서 퇴원 한다니더”라며 마음에 안위를 드리는 거짓말뿐이다. 옹기종기 장터에 앉아있는 할머니들 모습에서 절망에 빠진 자식을 살려내려는 그 옛날 어머니의 간절했던 모습이 떠올라 배추전을 사들고 돌아가는 길 슬픔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얼마 있으면 춘삼월 지나 꽃피고 새우는 사월이 올 것이다. 엘리엇은 겨울은 우리를 오히려 따뜻하게 해주었고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사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며 역설적인 표현을 하였다. 그렇다 소생과 탄생의 사월에 진정한 쾌유와 희망은 가져오지 않고 허망한 삶의 기억과 고통만을 안겨주는 어머니의 절망적인 이 상황이 어쩌면 진정으로 잔인한 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월은 잔인하지만 희망의 달이다. 절망에 빠진 아들을 일으켜 세웠던 것처럼 병상을 박차고 일어서는 어머니를 상상하며 대지를 푸르게 점령해올 눈부신 사월을 나는 믿는다. 봄은 꽃샘추위를 동반하며 두 발짝 앞으로 갔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를 반복하며 봄의 정점을 향해 서서히 행진하고 있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어 가며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생명의 봄은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삼년 후에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사람이 죽어서 삼년 후에 다시 살아난다면 세상에 인간이 많아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씀 드리니 “그렇지......” 말끝을 흐리시며 공허한 웃음을 보이신다. 그래도 어메(엄마)는 나중에 돌아가신 다음 삼년 후에 다시 살아오시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내심 좋아하시는 듯하다. 그렇다 다시 살아오지 못 하더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다가 먼먼 후년 어머니 좋아하시는 봄날에 꽃숭어리 뚝뚝 떨어지는 날 슬프지만 아름다운 걸음으로 가셨으면 좋겠다.
아침을 드시고 통증과 함께 토하는 날이 잦아졌다. 서서히 지쳐가는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아직까지도 당신께서 무슨 병에 걸리셨는지 모르고 “야이야~ 여기 옆구리가 왜 자꾸 아프노?” 하실 때는 억장이 무너진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알권리를 두고 사회적으로는 갑론을박하고 있다. 무엇이 환자를 위한 최선일까를 생각해보아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환자에게 불치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린다고 하여 죽음을 편하게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더 나아질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하여 살아오면서 가졌던 존엄과 가치관을 가지고 생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마저 무시해버린다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감수성 예민한 어머니를 잘 알고 있기에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나는 전할 수가 없다. 당신의 중병을 모르고 날마다 퇴원준비를 하시는 어머니는 옆구리의 통증을 단순한 담(痰)으로 생각 하며 내일은 마을회관에 꼭 가야된다고 의지를 세우고 계신다.
탄생의 달 사월의 문턱,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조용히 기도하는 눈앞에 보행기를 밀며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환영(幻影)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도 마을회관의 벽시계는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처럼 긴 추를 덜렁이며 고장도 없이 노인들의 여생(餘生)을 재촉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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