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5-20 15:37:17

독립운동의 의의와 나아갈 길

황보문옥 대구취재본부장
황보문옥 기자 / 1471호입력 : 2022년 09월 26일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의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은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첫째, 한국의 독립운동은 제2차 대전 이후 한국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1910년 이후 한국인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 중국, 러시아 연해주 등 각지에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 1920년에는 한 해에 1000~2000명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갈 정도로 수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해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제2차 대전이 끝나는 과정에서 연합국 측은 한민족의 독립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이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의해 일정한 과정 뒤에 한국을 자유·독립하게 한다'라고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힘이었다고 본다.

둘째, 한국의 독립운동은 한국인이 근대적인 민족과 계급, 계층으로 새로 태어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3·1운동을 비롯해 여러 민족운동에 참여하면서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어 근대적인 민족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한민족으로의 결집 과정에는 민족주의의 계몽운동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 한국인들은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형평운동, 청년운동 등을 통해 계급과 계층이라는 근대의 주체로서 새롭게 탄생했다. 계급과 계층으로서의 재탄생 과정에는 사회주의의 계몽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셋째, 한국의 독립운동은 건국 과정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이념과 자본주의적 경제에 토대를 둔 민주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반면에 다른 한 편의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 이념과 공산주의적 경제에 토대를 둔 인민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그런 가운데 조소앙은 양자를 절충하고 한국의 실정에 맞는 삼균주의 이념을 창안해 냈다. 그리고 임시정부는 이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을 수립한다는 건국강령을 만들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한국의 실정에 맞는 건국이념을 스스로 만들어 냈으며 이는 한국 독립운동의 커다란 성과였다.

넷째,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 약소민족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됐다.
세계 약소민족들의 반제국주의운동, 민족해방운동, 혁명운동과 일정한 연대를 가지면서 전개됐다. 우선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인들의 신해혁명, 북벌운동, 항일전쟁 등에 광범위하게 참여했다. 또 공산주의자들은 베트남, 인도, 등의 공산주의 운동과도 연대를 모색했으며 중국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중국, 일본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반제국주의운동을 펼쳤다.

◇ 한국 독립운동의 한계
첫째, 한국의 독립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통일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1910년에는 복벽주의와 공화주의가 대립했으며, 1920년대 이후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아나키즘이 서로 대립했다. 또 1919년 이후 민족주의운동 내부에서도 무장투쟁 노선과 외교운동 노선, 정치투쟁 노선과 실력양성 노선 등이 서로 대립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 내부에서도 이르쿠츠크파, 상해파, 서울파, 화요파, 각 파벌의 대립이었다. 그리해 1920년대 국내의 신간회 운동도 겨우 4년 밖에 가지 못했고, 중국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은 유일당 결성을 성사시키지도 못한체 끝나 버렸다. 

그리해 민족혁명당 세력이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과정도 지지부진했으며, 그 결과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 세력은 충분히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해방을 맞이하고 말았다.

둘째, 독립운동 진영에서 가장 큰 세력이자 가장 오랫동안 존속된 기관이었던 임시정부는 중국 정부나 미국 등 연합국 정부의 승인을 끝내 받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해방 이후 연합국 간에 이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고 역시 중국에도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도록 종용했다. 

결국 임시정부는 어느 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분단정부 수립과정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셋째, 해방 직전 각자의 독립운동 세력들은 나름대로 의지하는 나라들이 있었다.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에 화북조선독립동맹은 중국공산당에 88여단은 소련정부에 의지하고 있었다. 이들 후견국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이 때문에 해방 직후 이들은 각각 후견 세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다만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은 곧 내전 상태에 들어가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88여단과 화북조선독립동맹은 북한에 들어와 소련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 

또 이승만은 해방 직후 미국에 기대어 귀국했고 이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됐다. 미국과 소련이 남북을 각각 점령하고 있던 상황에서 각 정치 세력은 하나로 결집해 분단을 막아야 했지만 오히려 분열하여 외세에 의탁하는 행태를 보였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동지로서 함께 활동한 경험이 적었던 것이 해방이후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이라는 구심력보다는 외세에 의한 분열이라는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 우리가 나아 갈 길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게 된 것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외세에 의한 남북 분단정부 수립을 막지 못한 것은 절반의 실패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독립의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던 일제 지배하에서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펼쳤다. 

오늘의 우리가 독립운동사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점이다. 독립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조국 통일을 완수하는 길로 나아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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