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청 청사 내에 경북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인 ‘경북연합의병부대 창의정용군의 영천성 수복전투!’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반전의 역사스토리로 변환되어 누구나 상시로 볼 수 있게 됐다. 조선왕조 선조실록 선조25(1592)年 9月 신미조-에는 “박진이 영남좌도(영천성수복전투)를 수복한 공로는 이순신의 공과 다름이 없는 것으로 영좌에 자못 생기가 돌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과 지역 임란사를 기록한 40명의 문집 등을 바탕으로 경북의 시대정신인 ‘화합’을 영천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 경북도청 청사 내에 ‘창의정용군룸’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임진왜란 425주년을 맞아 지난 2017년 8월14일부터 30일까지 영천시민회관과 영천역사문화박물관(용화사 지봉스님)이 공동으로 ‘영천성 수복전투, 그 이후 영천’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개최한데 이어 11월 3일부터 9일까지 일주일동안 도청로비에서 ‘경북연합의병부대 창의정용군의 영천성 수복전투’ 라는 주제로 관련 문화원형 120여점을 선보였고 경북 도청의 1,500명 직원과 도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영천이라는 지역이 당시에 이뤄냈던 역사를 널리 알리는 큰 계기가 됐다. 전시기간 중에 전시관을 찾은 김관용 도지사는 지봉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 큰 관심과 놀라움을 표현했고 “임란 때 경북연합의병부대가 영천성에서 얻어낸 이러한 성과가 여태껏 알려지지 않고 있었는가” “공인된 사실이라면 보존방안을 강구해보자”라는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영천성 수복전투에서 경북의 시대정신인 ‘화합和合’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였고 올해 1월 도청에서 청사내부 리모델링 부분에서 25평 방 한 칸을 ‘영천성수복전투’ 역사이야기로 꾸미기를 요청, 지봉스님의 기획과 연출로 ‘창의정용군룸’ 이 마련되는 큰 성과를 얻은 것이다. 창의정용군룸은 입구에 ‘경북의 시대정신을 이곳에서 찾다’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되고 방 전체는 역사기록 서적나열을 시작으로 Chapter 1~7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최초의 활자조판 상업용 일간신문, 민간조보 재현품과 조선왕조실록 재현품을 전시, ‘치우기’ 라는 혜성이 임진왜란이라는 대전쟁을 예견했던 것과 민간조보에 보도 되었던 내용, 왜군이 1592년 4월 침공을 시작해 국내 지역을 점령해나간 순서와 의병이 조직되어 반격으로 성을 되찾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경북 10개 지역의 의병장과 의병참전 내용, 영천성 수복전투도 3점이 전시됐다. 지봉스님은 “영천이 큰 국난이었던 여러 차례의 전쟁에 있어 마지막 방어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나라를 구한 사실을 모두 알리기 위해 마지막 부분에 구한말의병부대 ‘산남의진 기념비’와 ‘625 전승비’로 장식했다.”며 “영천인의 긍지가 되고 나아가 경북인의 긍지가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으니 더 많은 국민들이 알아가고 결국 역사교과서에도 등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경북도청 창의정용군룸의 관람포인트는 ‘경북이 조선 역사의 주역이었고 영천이 경북을 이끈 주역이었다.’라는 점이다. 1592년 조선시대 영천민이 주축이 되어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영천성 수복전투! 가슴 뭉클해지는 지역사와 말로 표현하기 조차 어려운 화합과 결단력으로 목숨을 바친 3,560명의 이름 없는 의병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영천성 수복전투는 참여했던 가문이 공로의 우열을 가리느라 영천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자랑스러운 문화원형을 통해 지역 밖으로 알리고자 오랫동안 노력한 지봉스님이 얻어낸 지금의 성과에 큰 박수를 보낸다. “임진난이 끝나고 10년이 흘러도 영천복성전투와 이순신의 명량해전이 임진왜란 중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고 이야기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전투이자 경북의 10개의 시군민들이 국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해야 하며 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화합和合’임을 새겨야 할 것이다. 영천=신경운 기자 skw619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