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5-20 04:56:44

농바위골의 은인·서문경머슴


박선애 기자 / 입력 : 2018년 01월 24일

▲ 김 시 종 시인 / 미산올곧문예상 운영회장

서문경(徐文京)이 농바위골의 동네 머슴이 된 것은 1839년경의 일로, 그의 나이가 스무살 적이었다. 서 문경은 고향이 어디이며, 어떤 연유로 궁벽한 농바위골까지 흘러 들어왔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1839년은 헌종 때였는데 프랑스 신부 모방·샤스땅·앙베르와 정하상 등 80여명의 천주교 신도를 학살한 기해박해가 있던 해로, 세도정치의 폐단과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농바위골이 속해 있는 문경은 청송고을과 더불어 경상도 벽지의 대명사로 통했으나, 수세(水勢)만은 아주 좋아, 흉년과 풍년의 차이가 별로 없이 농사 작황이 늘 고른 편이였다.
그러기에 가뭄을 타는 의성, 군위 등 남쪽 고을의 유민들이 이 문경 땅에까지 밥을 빌러오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이 19세가 중반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수선한 난세였다.
서문경은 그즈음, 별다른 조건도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만으로 기꺼이 동네 머슴이 되었다. 흉년이 든 해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도 어김없이 닥쳤다.
1850년대의 어느 해 인가 괴질(怪疾)이라고 하는 소위 오늘날의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농바위골도 예외일 수 없었다. 동네사람 수십 명이 며칠 새 잇달아 숨지는 줄초상이 났다. 가족들까지도 시체에 손대기를 꺼려 송장 썩는 냄새가 온 마을에 가득하였다.
이웃집에서도 전염을 두려워하여 일체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살기 좋던 농바위골은 죽음의 마을로 돌변하고 말았다.
이때 하늘이 보낸 사람이 있었으니, 동네 머슴인 서 문경이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버려진 시체를 엽습하여 안장을 해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서 문경의 정성어린 인간애에 감동을 했고, 그제야 자기들의 이기심을 부끄러워했다.
수세가 좋은 농바위골은 가뭄을 모르고 살았지만, 반면에 홍수로부터 엄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예년과 다름없이 큰물이 졌다. 마음 앞을 흐르는 영강 상류 개울가에서 놀던 어린이 세 명이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냇물이 불어 그 급류에 휩쓸렸다.
동네 사람들은 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발만 구를 뿐 누구 한나 냇물에 뛰어 들려 하지 않았다. 그때 언재 나타났는지 서 문경이 급류를 헤치고 동네 아이를 업고 나오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겐 서 문경이 부처같이 보였다. 마을이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가 나서서 거뜬히 해결해 주곤 했었다. 동네 사람들이 서 문경의 선행을 극구 칭찬할라치면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하며 자기의 공을 별 것이 아닌 듯 말하는 것이었다. 순박한 동네 머슴의 갖은 선행은 드디어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밥만 먹여주고 잠이나 재워주는 걸로 더 없이 만족해하는 그에게 앞으로는 해마다 벼 한 섬을 새경으로 쳐 주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장가도 들지 않은 채 뼈 빠지게 일만 했었다. 마치 그는 일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돈을 쓸 줄도 몰랐고, 가족 하나 없는 그에겐 돈을 쓸래야 쓸데도 없었다. 한 해에 한 섬 받는, 조선 천지에서 제일 싼 새경이건만 그는 차곡차곡 착실히 모았다. 환갑도 훨씬 지난 65세 되던 1884 추수 때 45년간의 동네 머슴살이 끝에 모은 돈으로 논 두 다랑이 422평을 마련하게 됐다. 늘 남의 땅만 밟던 서 문경에게 땅 두 마지기는 천하보다 넓은 공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남의 농사도 지성으로 짓던 정직한 사람이라, 논을 사놓고 하도 좋아 달밤에도 논에 나가는 때가 많았다. 장수의 비결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란 걸 서 문경의 경우에도 볼 수 있었다. 마흔 살도 채 못살던 조선시대에 그는 65세를 누렸다. 논을 사놓고 못내 좋아하던 그가 논문서의 먹물이 채 바르기도 전에 노환으로 몸져눕게 되어 그해 10월 17일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야 말았다. 눈을 감기 전, 그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유언을 하였다.
“들에도 나무에도 의지할 데가 없는 불쌍한 저를 평생토록 아무 랄 없이 살게 해준 농바위골을 저승에 가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죽거들랑 장례나 치러주시고 제삿날엔 잊지 말고 찬물이나 한 사발 떠 놓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서 문경은 드디어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자식이 없이 죽은 그의 눈물겨운 논 두 마지기는 마을에 회사되었다. 주민들은 생전에 서 문경이 힘겹게 일하던 냇가 양지바른 들판에 무덤을 해주고, 그의 유언대로 제삿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사를 받들었다.
시조시인 이 기라는 농바위골의 동네머슴 서 문경의 기리는 시(詩)를 지었다.
(시조) 농바위골의 수호신 / 이기라
스무 살 청년 서 문경 고향 모를 서 문경 / 바람처럼 구름처럼 정처없이 흘러와서 / 가뭄에 단비 내리듯 농바위골 적시었네
콜레라 전염병도 갯바위천 홍수도 / 거리끼고 무서울 게 그 하나 없었거니 / 서 문경 장한 마음에 새경주어 새기었네
장가 안 간 예순 다섯, 일만하던 동네머슴 / 새경 모은 두 마지기 논문서 검은 글씨 / 먹물도 마르기 전에 노환으로 눕게 됐네
들에도 나무에도 의지할 데 없는 사람 / 아무런 탈 없이 평생토록 살게 해 준 / 그 은혜 저승가서도 잊을 수 없다 했네
미천한 내 죽거든 장례나 치러주고 / 기일엔 찬물이나 한 그릇 떠 달라고 / 마지막 임종에 앞서 남기고 간 말이었네
마을 앞 갯바위천 옆 양지 바른 들판에 / 주민들 정성껏 묘를 써 묻어 주고 / 지금도 시월 열 이례 동제로 받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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