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를 펴낸 것은, 1967년 9월의 일로, 내 나이 만 25세 때였다. 시집을 멋도 모르고 2천부나 펴냈는데, 시집 출간비가 6만5천원이나 됐다. 당시 6만5천원을 한 마디로 말해, 적은 돈이 아니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초등교사의 월급이 7천원이었다. 시집대금 6만5천원은 초임 초등교사 10개월의 봉급이다. 1967년엔 당시 시단의 중진시인 미당 서정주 시인도 시집을 5백부 밖에 내지 않던 어렵던 시절이다. 내 첫 시집 보급을 위해, 안동교육대학 국어과 유증선 교수님?안동교대 2대 학보편집국장 김동억님?문경종합고등학교 미술교사 황병훈 선생님이 자기 일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3년만에 시집대금을 청산할 수 있었다. 5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유증선 교수님?김동억 학보편집국장님?황병훈 선생님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확고부동한 은인이 되셨다. 첫 시집을 내고 천신만고를 겪었지만, 지금까지 시집을 40권을 펴냈으니, 김시종의 시집발간에 대한 집념은 못 말릴 경지다. 지금까지도 내가 잊지 못하는 첫 시집 에 실린 주옥편(?)을 애독자들과 함께 문학기행(시편력)을 떠나볼까나. ①고가(古家) 삶의 밀물따라 / 오고가는 후조(候鳥)들아 대(代)를 이어 살던 고가(古家) 누구네가 솥을 건고? 오늘도 뒤뜰 감나무만 / 푸른 꿈이 여무리. (1964년 여원 5월호 입선작) ②꽃신 한데선 흙 묻을라 / 벗어들고 다니고 방에선 그냥 신고 / 좋아라 아장거리고 잘 때는 꼬옥 껴안고 자는 / 세 살난 아기의 신. (1965년 여원 6월호 입선작) ③뚝배기 화사한 자개상이사 / 본시 원하잖는 것 부뚜막 한 구석에 / 쪼그리고 앉았어도 한 평생 투박한 얼굴 / 찡긴 적이 없어라. (1966년 7월 중앙일보 입선작) ④밤 뚝! 감꽃지는 소리 / 들릴 듯 괴괴한 밤 그무는 등잔 밑으로 / 기어드는 작은 거미 바르르 줄에서 떠는 / 추억에 젖은 벌레여! (1966년 6월 중앙일보 입선작) ⑤비(碑) 어엿이 그젯날엔 / 임을 기리던 자세. 바람 비 깍인 이제 / 부질없는 점자판을 차라리 고운 석화(石花)여 / 너를 읽고 싶구나. (1964년 여원 5월호 입선작) ⑥사바 살구꽃 화사히 펴도 / 흙바람 부는 사바. 무심한 애 팔매가 / 아뿔사, / 어른을 맞춰… 그렇게 찡그릴 거야 / 어처구니없는 북망. 길가다 소나길 만나 오두막에도 잠깐 쉬듯 연(인연)이 없는 곳에 / 더러는 맘을 두고 웃으며 / 때론 흐느껴도 살아가는 사바다. (1966년 11월 시조문학 14집 입선작) ⑦삶 소경 지팽이로 / 더음어 가는 외다리 기슭을 출렁이는 / 인고의 세월 위로 오늘도 하루를 사뤄 / 곱디 고운 저녁놀! (1966년 여원 5월호 입선작) ⑦삼베댕기 눈물 꽤 좋이 흘려 / 눈이 발그레해진 순이 눈은 붉은 눈 / 구구구 비둘기눈! 치렁한 / 머릿단 위에 / 노랑나비, / 감베댕기. 어멜 홀로 뫼에 떨궈 / 몇 때를 울어 쌓는지… 동네방네 사람이 들은 / 구성진 뻐꾸기 소리… 결고운 / 머리에 삼베댕기 / 서울 가도 못 풀 댕기! (1966년 7월 일요신문 입선작) ⑨어머니 딸네집 오셨다가 / 바람부는 날 가시네. 눈 앞이 가리는 걸 / 바람에 탓하시나 제 눈에 괴는 눈물도 / 그런 줄을 아실까? (1966년 5월 중앙일보 입선작) ⑩오뉘 보릿고개 아래 / 아카시아 꽃 하얀 5월! 언제나 소녀의 노랜 / 현실보다 한 「옥타브」 위…
허름한 작업복의 꾀죄죄한 오라비는 새빨간 「타이」 대신 / 올가밀 걸고 싶어도 누이의 꿈이 깰까 봐 / 몸을 바로 가눈다. (1966년 7월 중앙일보 입선작) ⑪옥수수 옥수수 익어가면 / 그리움도 여뭅니다. 임 오실 그날이면 / 가마에 불 지피고 오롯이 등심(?心)타는 밤 / 깊은 사연 사뢰오리. (1962년 10월 동아일보 입선작) ⑫후레아들 동무의 종아리엔 / 아빠가 때린 맷자국! 내려다뵈는 내 종아리엔 / 때릴이도… / 쓸어줄 이도… 펑하고 쏟아지는 눈물 / 매 안 닿은 후레아들! (1966년 6월 중앙일보 입선작) 문학기행(시편력) 재밌습니까?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7일 16시 40분) ▲ 김 시 종 시인 /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