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와 미테랑(1916~1996)는 프랑스 21대 대통령이다. 미테랑은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재임하면서 파리를 중심으로 문화예술 관련 대규모 건축물을 지었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오르세 미술관, 라빌레트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테랑 정부는 프랑스의 랜드마크를 새롭게 자리매김한 이 국책 사업을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라 불렀다. 그랑 프로제에는 다양한 전략이 숨어 있다. 문화예술을 앞에 내세웠지만 사회적, 경제적, 산업적 편익을 함께 추구한다. 보다 넓은 미술관과 오페라극장이 필요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도시 경쟁력 확보, 지역 간 균형 발전, 시민의 자부심 확대, 관광 산업의 양질 변화 등을 도모한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그랑 프로제는 영국 런던 등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도 이뤄졌다. 우리나라도 그랑 프로제라 불릴만한 사업이 있다. 대표적으로 예술의전당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중앙정부의 주도로 건립에서 개관까지 10년 이상 걸린 대형 건축물이다. 예술의전당은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펼친 사회 전 부문의 소위 '개혁'의 산물이다. 언론 통폐합이나 삼청교육대와 같은 조치의 한쪽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독립기념관 등이 건립됐다. 예술의전당은 개관 후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 동기가 강했던 프로젝트였기에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3년 기초 연구부터 따지면 2015년 개관까지 12년이 넘게 걸렸다. 투입된 재원도 기록적이다. 대통령만 따져도 세 명의 대통령 임기에 걸쳐 있다. 예술의전당이 아트센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처럼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새로운 개념 위에 만들어졌다. 서울시의 새 콘서트홀 사업 구상도 기존의 그랑 프로제인 사업에 비해 만만찮은 규모다. 시작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정지인 노들섬에 콘서트홀을 비롯한 복합예술 공간을 지으려고 한 계획은 초스피드로 추진됐으나 새 시장으로 바뀌자 전면적으로 재검토됐다. 프로젝트 이름이 '노들섬 예술센터'에서 '한강예술섬'으로 바뀌고 기존의 당선작을 배제하고 다시 설계 공모해 새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또한 다양한 비판과 반대를 받으며 2012년 이후 사실상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그랑 프로제의 성격을 버리고 복합예술 공간에서 콘서트홀만 떼어낸 프로젝트 구상을 계속했다. 문제는 새 콘서트홀의 위치였다. 서울시는 타당성 조사(2014년)를 거쳐 2015년에 세종로 공원을 새 건립 예정지로 확정했다.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사이에 있는 세종로공원은 이미 지하 6층까지 도심 주차장이 조성돼 있다. 세종로공원 콘서트홀 건립 계획은 최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았다. 서울시가 세종로공원 콘서트홀과 세종문화회관을 묶어서 예술복합단지 조성을 검토하겠다고 올해 밝혔다. 이렇게 되면 건립한 지 40여 년이 지난 세종문화회관과 초현대적 공연장인 콘서트홀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사업이 된다.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면 서울에 새로운 랜드마크로 세워질 수도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탁월한 위치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인프라와 운영만으로는 서울(나아가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미 문화유산급인 기존의 인프라를 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홀은 이 일대의 문화적 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다. 그것은 세종문화회관보다 서울, 우리나라에 더 좋은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시대에 딱 맞는 그랑 프로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