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폭염 탓인지, 붓을 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냉방이 잘 된 문화원 사무국장실에서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안씨열전(安氏列傳)을 적어, 방황하는 현대인의 국가관에 확신이 되는 글이 되기를 소망한다. 고려시대는 공자와 석가가 낯 안 붉히고 균형 있는 사회를 지켜온 모법적인 시대라고 확신한다. 충선왕 때 안향(안유)는 원나라 서울 연경에서 성리학을 처음 고려에 전래하여, 이를 계기를 성리학은 이 땅의 정치와 도덕의 기본적인 이념이 되었다. 조선은 성리학 때문에 발전했고 지나친 성리학 편중 때문에 기술을 경시하여 일찍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제국의 밥이 되고 말았다. 어떤 학문이 좋고 나쁜게 아니라, 그걸 다루는 사람들의 합리적인 태도가 꼭 필요한 것이다. 세종 성대에 화원 안견은 ‘몽유도원도’란 그윽한 걸작을 남겼다. 안평대군이 꿈에 다녀온 도원 이야기를 듣고 그림으로 그려서 그런지, ‘몽유도원도’를 보면 이 세상이 분명 아닌, 이상세계를 보는 고즈넉한 기분이 든다. 세종조의 안견은, 단원 김홍도 화원(정조)?오원 장승업(철종)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 화가다. 지금도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억지를 쓰지만, 독도는 안용복 장군 덕분에 조선 숙종 때부터 우리나라 영토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1661년~1720년)때의 인물로, 울릉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인을 내치기 위해 두 차례 일본땅을 오간 간 큰 민간 외교가다. 안용복은 동래인(부산)으로 벼슬이 수군 노졸(뱃사공)이었다. 민간인으로 해금(海禁)을 어기고 일본을 오갔다는 죄로, 강원 관찰사(원주 소재) 심기에게 체포되어 극형을 받게 되었는데 울릉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한다는 일본의 국서(國書)를 받고, 사형에서 감등되어 귀양살이를 하게 됐는데 안용복 장군의 후일담은 기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국가기밀이 누설된다고 조선 당국은 국민의 해외진출을 엄금했다. 우둔한 정책 덕분에 무역이 부진하고, 기술 유입이 전혀 안되어 근대화를 조기 달성한 해양국가인 일본의 먹이가 되고 만 것이다. 조선을 망친 일본 이등박문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천하의 쾌남아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들도 극진히 존경하는 대한의 애국열사일 뿐 아니라 세계인인 것이다. ‘하루만 책을 안 읽어도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 의사의 수품(서예)는 독서의 중요성을 오늘의 우리에게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은,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 살던 세계적인 음악인이다. 애국가 곡(曲)은 안익태 선생이 불가리아 농촌을 여행하다가 불가리아 농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창작을 위해서는 여행을 자주하고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야 한다. 애국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라가 없으면 애국가도 있을 수 없다. 요사이 이 땅 주인들은 애국가를 존중하고 있는가 확인이 있어야 한다. 1절만 부르지 말고 4절까지 완창(完唱)해야 한다. 애국가 가사 중 절정인 것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이다. 애국가 가사대로 우리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 발전되기를 기도하고, 기대한다. ▲ 김 시 종 시인 /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