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금융그룹이 대구은행장 선임을 놓고 또 다시 내홍에 휩싸였다.
김태오 DGB금융 회장이 대구은행장 겸직을 공식화 하자 노조가 김 회장의 '장기집권 시도'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또 은행 이사회도 김 회장의 겸직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지주와 은행간 집안싸움은 더욱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임 행장이 채용비리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대구은행으로선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DGB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11일 열린 자회사 최고경영자추천위원회(이하 자추위)에서 김태오 회장을 대구은행장 후보로 추천하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 겸직체제를 결정했다.
자추위는 지난 10개월여 동안 공석이었던 대구은행장을 선임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최고경영자승계절차 개시 후 후보자 추천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대구은행에서 추천한 2명을 포함해 8명 안팎의 후보자 역량과 은행장으로서의 자질을 종합적으로 심의한 결과 채용비리 및 비자금, 펀드 손실보전 관련 등으로 마땅한 후보자를 찾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김 회장을 한시적으로 겸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게 자추위의 설명이다.
대구은행 이사회는 15일 은행 임원후보 추천위원회(임추위)의 추천을 거친 뒤 주주총회의 결의에 따라 최종적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김태오 회장의 은행장 겸직 안건 논의를 오는 18일로 연기했다.
임추위 연기는 김태오 회장의 은행장 겸직 결정을 놓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은행 임추위가 김 회장 겸직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어, 김 회장을 은행장으로 추천할 가능성이 낮아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DGB금융은 김 회장의 은행장 겸직 안건이 통과하지 않을 경우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주주총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DGB금융은 대구은행 주식 100%를 보유한 유일한 주주로 겸직 안건을 스스로 주주총회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3월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이 대구은행장 사임 의사를 밝힌 이후 10개월째 행장 공석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박 전 행장은 지난해 9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받았다. 그는 2014년 3월부터 2017년까지 각종 채용 절차에서 함께 기소된 전·현직 임직원과 공모해 24명을 부정 채용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됐다.
박 전 행장은 검찰수사가 본격화 되자 지난해 3월 DGB금융 회장과 대구은행장 자리에서 모두 물러났고 4월 말 구속됐다. 이후 박명흠 전 부행장이 대구은행장 직무대행을 맡아 왔고, 박 부행장의 임기 만료로 지난달 퇴임함에 따라 김윤국 부행장보가 새 직무대행에 선임됐다.
지난해 상반기 김경룡 전 DGB금융 부사장이 차기 대구은행장에 내정됐지만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은행 안팎의 압박을 받으면서, 지난해 7월 자진 사퇴했다. 대구은행 내정자의 중도 낙마 사태가 벌어지자 업계에선 김태오 회장의 은행장 겸직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러한 관측이 현실화 하자 대구은행 내부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는 형세다. 은행 이사회와 노조는 "지주 측이 최고경영자(CEO)의 제왕적 권한에 따른 비리 차단 등을 위해 권한을 분산한 원칙을 무력화했다"며 즉각 반발했다. 특히 노조는 "내부 출신 후보자를 선출하지 않을 경우 전 직원과 함께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셌다. 대구은행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성명에서 회장의 은행장 겸임 방침에 대구은행 이사들이 반발하고 있고, 직원 입장도 갈리는 등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민대책위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은 분리돼야 하고 박인규 전 행장 시절 임원들이 행장이 돼서는 안된다"며 "특히 지주 회장이 행장을 겸임하는 것은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돼 견제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행장 후보를 외부에 개방해 적격자를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김태오 회장이 사내방송을 통해 은행장 겸직 체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집안 싸움을 본격 예고했다.
김 회장은 “과거와의 단절과 책임경영이라는 대의의 기준을 충족할 만한 은행장 후보자를 찾지 못했다"며, "직무대행 체제의 계속 또한 조직의 안정화와 DGB의 발전이 늦어지게 되기에 부득이 하게 한시적인 은행장 겸직체제를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기존 겸직체제 분리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스런 마음이고 한시적 은행장 겸직기간 동안 최고의 은행장을 육성한 후 미련 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회장은 "겸직기간 동안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은행장 육성프로그램을 통해 순수 혈통의 훌륭한 차기 은행장을 양성하겠다"며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는 투명한 인사와 내부 인재에 대한 양성과 다양한 기회제공, 파벌문화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 근절을 통한 DGB만의 건전한 기업문화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권한의 위임을 통한 자율경영체제 구축과 선진화 된 지배구조 등으로 인해 과거로의 회기나 권력의 독점으로 인한 폐단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구은행장 선출을 놓고 지주와 은행간 지루한 집안싸움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고객신뢰와 이미지 추락을 불러오고 있다"며, "전임 수장이 채용비리 등으로 불명예 퇴진한 상황에서 분위기 쇄신과 조직정비를 위해선 CEO리스크를 하루 빨리 털어내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news1213@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