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3 05:28:46

선관위 특혜 채용, 청년들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동국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
황보문옥 기자 / 2037호입력 : 2025년 03월 04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대한민국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또 한 번 무너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특혜 채용 문제가 드러나면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닌, 부모의 권력과 연줄이 채용을 결정하는 구조라면, 이는 단순한 채용 비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갉아먹는 구조적 문제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개인의 부정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감사원이 지난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도 선관위의 지난 10년간 경력직 채용 과정을 점검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 선관위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채용해 달라고 인사 담당자에게 청탁한 사례들이 확인됐다. 또 구체적 채용 공고 없이 특정 직원의 자녀를 내정하거나, 특정 응시자에게 유리하도록 시험위원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부정이 이뤄졌다. 심지어 면접 점수를 조작·변조하는 방법으로 청탁이 이뤄진 사례도 드러났다. 이는 공정한 경쟁을 믿고 도전했던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특혜 채용이 청년에게 주는 정신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박탈감’과 ‘허탈감’이다. 수십,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 노력한 청년이 “애초에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공정성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무너진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자존감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신뢰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공정성이 무너질 때, 청년은 미래를 꿈꾸는 대신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게 된다. 반복된 실패 경험은 결국 ‘학습된 무기력’을 초래한다.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니트족(NEET)’ 청년(15~29세)이 44만 명을 넘어섰다. 경기 불황과 지나친 경쟁이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공정한 경쟁과 확실한 보상이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또 청년이 도전을 포기하는 이유는 단순한 경쟁 때문이 아니라,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능력을 키워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노력과 성취가 공정한 기회로 연결되지 않을 때, 좌절과 무기력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선관위가 오랜 기간 제대로 감시받지 않았으며, 내부적으로 특혜와 비리가 만연한 조직으로 고착됐다는 점이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7일 “감사원의 중앙선관위 직무 감찰이 권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위헌으로 결정했다. 

이제 선관위는 감사원 감찰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외부 견제가 사라진다면, 선관위는 더욱 폐쇄적인 조직이 될 것이고, 공정성과 신뢰는 더욱 붕괴될 것이다.

사회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제도적 불신(institutional distrust)’이라 한다. 제도적 불신이 만연하면, 사람은 법과 규범을 따르려 하지 않고, 편법과 반칙이 정당하다고 인식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라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낮아지고 부패는 구조화된다.

일자리 부족과 공정성 붕괴가 청년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정신건강 및 행동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환자는 110만 9300명에 달했다. 특히, 20대 우울증 환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며 연령대별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청년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공정한 환경 때문에 깊은 무력감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다. 공정성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신뢰가 사라지고, 구성원들 간의 협력보다는 불신과 갈등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결속력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관위 사건은 단순한 채용 비리가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안정성과 신뢰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구조적 문제다. 공정성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개인은 좌절하고, 공동체는 불신으로 분열되며, 결국 사회 전체가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은 더욱 깊은 병을 앓게 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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