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3 01:08:11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불씨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봉화 소방서장 김인식
정의삼 기자 / 2208호입력 : 2025년 11월 29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바람 끝이 서늘해진 요즘이면, 문득 옛 겨울 풍경이 떠오릅니다. 마른 낙엽 위에 불을 지펴 고구마를 굽던 어린 시절, 정월이면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가 동네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날들, 연탄불로 데운 따끈한 구들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발을 녹이던 기억까지 

흔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부르던 그 시절에는, 불을 가까이 두고 사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익숙한 불은 늘 위험과 맞닿아 있었고, 그 그림자는 지금도 우리의 겨울 곁을 조용히 맴돌고 있습니다. 이제는 호랑이조차 흡연구역을 찾아 헤매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오래전부터 이어온 ‘불을 대하는 습관’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편안함을 안겨 주던 불이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불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매 겨울 우리는 잊곤 합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약 3만 8천 건 안팍의 화재가 발생하며, 그중 겨울철 화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화재 원인의 상당수가 담뱃불(약 32%), 화기 주변 안전관리 소홀(약 19%), 쓰레기 소각과 논·밭·임야 태우기(약 17%) 등 부주의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 숫자들은, 우리가 불과 함께 살아온 방식이 여전히 현재의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산과 논·밭이 많은 우리 지역의 겨울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메마른 들판과 산자락, 마을과 산림이 맞닿은 지형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번질 수 있는 환경이 쉽게 만들어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겨울 들녘이지만, 그 안에는 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른 풀과 낙엽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오래된 습관들이 있습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논·밭두렁을 태우던 소각 관행, 생활 속 부산물을 “불에 한 번 맡기면 끝”이라 여기던 버릇, 들판에서 가볍게 털어버리던 담뱃불, “이 정도 불씨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지나치던 익숙한 행동들이 그것입니다. 오늘의 겨울은 예전보다 훨씬 건조하고 민감해져, 작은 불씨 하나에도 더 쉽게 상처를 입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장작을 사용하는 화목보일러와 화목난로는 여전히 많은 농촌·산간 가구의 소중한 난방수단입니다. 따뜻한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굴뚝의 풍경은 정겨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연통과 배기구, 재받이처럼 불씨가 머무는 위험 지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일러 주변의 낙엽과 나뭇가지, 쌓여 있는 장작더미를 한 번 더 살피고 정리하는 일은, 겨울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배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대책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조금씩 바꾸어 가는 일입니다. “잠깐이면 되겠지” 하는 마음 하나, “이 정도쯤은 괜찮다”는 방심 하나가 산과 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의 겨울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겨울은 무엇보다 따뜻해야 하고, 그 온기만큼 안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때, 비로소 우리의 겨울도 달라집니다.

들녘의 작은 불티 하나, 논둑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 바람 사이로 스치는 불내 한 자락, 그 작은 차이를 알아보는 여러분의 시선이 곧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켜줍니다. 오늘 내가 끈 한 번의 불빛, 오늘 내가 꺼낸 한 번의 관심이 내 이웃과 마을, 그리고 산과 들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됩니다.

다가오는 겨울, 모두가 따뜻하고 평온한 계절을 맞이하길 바라며, 소방은 여러분의 일상에 온기가 머무를 수 있도록, 언제나 곁에서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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