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3 00:53:56

담배공장의 변신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6월 18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며칠 전 담배공장이란 곳을 처음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선 더 이상 담배를 만들지 않는다. 이미 18년 전에 가동이 중단된 폐공장이다.
청주는 나에게 가장 덜 익숙한 도시다. 지나다가 들른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청주가 얼마나 큰 곳인지,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 어떤 산업으로 먹고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청주 방문에서 이런 의문을 속 시원히 푼 건 아니나, 매우 인상 깊은 것을 하나 보았다.  
한 나절 청주에 머무는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 담배공장이다. 그곳 사람들은 담배공장이라고 말하지 않고 ‘청주연초제조창’이라고 불렀다. 유식하게 들렸지만 그게 공식 명칭이었다. 그러나 나는 담배공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야 이 시설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잘 풀릴 것 같다.
궐련을 만들던 담배공장과 담배 창고 등 3동의 건물은 철없이 컸다. 높이 솟은 굴뚝 하나가 그대로 우뚝 솟아 있는 게 공장 분위기를 더해줬다. 일정 때 만들어진 부속건물이 몇 채 더 있다고 하나 큰 공장에 막혀 잘 보이지 않았다. 부지도 넓고 건물도 커서 멀리서도 공장으로서의 개성이 뚜렷해 보인다.
그런데 이곳은 더 이상 폐쇄된 담배공장이 아니었다. 옛 담배창고 건물에는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라는 간판이 붙었고, 건물 안에는 문화와 관련된 공공기관 및 NGO와 창업 기업들의 전시실과 사무실이 입주해 있고, 인큐베이팅 수준의 각종 기업 사무실도 촘촘히 들어차고 있었다. 천장이 높은 건물내부가 아직 엉성해 보이긴 했지만 드나드는 사람이나 직원도 젊고 생기 발랄했다.   
이웃한 폐 담배공장에는 이곳서 10년째 열렸던 ‘청주공예비에날레’ 안내광고판이 가득가득 그 높은 외벽 면을 메우고 있다. 담배창고와 제조공장은 요즘 생기는 빌딩과는 달리 천정이 높아서 공간이 헐렁해 보이는 한편 자유스럽고 여유가 있었다.   
18년 동안 문을 닫고 잠자던 이 담배공장은 중앙정부와 청주시의 도시재생 협력프로젝트로 첨단문화산업단지로 변신하는 중이다. 요즘 짓는 첨단 유리 건물보다 규모와 생김새가 육중하고 구식이지만, 그 어느 시설보다 이 담배공장이 청주를 더 잘 상징하게 될 것 같다. 담배산업시대에서 문화산업시대로 변화하는 청주 역사의 한 단면을 느낄 수 있고, 이게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담배 역사는 임진왜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담배가 재배되기 시작하자 끽연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남녀노소 누구나 담배를 피웠다는 건 옛 문헌과 풍속화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1907년 고종44년에 일본으로부터 빌린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이때 단연회(斷煙會)가 생겨 “우리 국민이 2000만이 모두 담배를 끊으면 석달이면 원금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고, 이 일이 신문에 보도되자 큰 호응이 일었고 고종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보면 담배가 환금작물로서 농촌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주연초제조창이 1946년에 건설된 것을 보면 충북 농촌지역이 담배 재배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충주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1950~60년대에 충북 일대는 담배농가가 많았으며 논농사보다 담배농사를 짓는 게 자식을 서울 학교에 보내는 것이 수월할 정도로 담배는 중요 농산품이었다.       
미국도 담배농사가 초기 독립의 기초가 되는 산업이었고,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 등 독립 초기 대통령들도 담배농장주였고, 담배농사 수입으로 독립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은 담배농사 이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혁명의 선두에 섰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도 전해진다.
청주 연초제조창에는 한때 1만5000명이 일했으니 청주경제의 버팀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흡연인구는 많지만 담배소비가 조세수입을 좌우하는 시대는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소비문화는 담배산업에서 문화산업으로 이동 중이다. 따라서 청주의 담배공장이 첨단문화산업단지로 변신하는 것은 아주 상징적인 스토리텔링의 모델이다.     
청주시 문화계 인사가 중심이 된 집행위원회가 이 행사를 준비하는 것을 잠시 보았다. 그들이 청주를 상징적으로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담배공장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이다. 나도 이번 청주에 가서야 담배공장을 처음 보았고, 직지심경과 청주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담배공장의 변신을 통해 청주 문화의 본질이 발현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 김 수 종 /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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