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2 22:45:07

태풍보다 폭염이 더 공포스럽다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30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지난주 제주도에 갔다가 태풍 솔릭의 포로가 되어 그곳 게스트하우스에서 예정에 없이 이틀 밤을 더 묵어야 했다.
순간 최대 풍속 62m로 솔릭이 한라산에 부딪쳤던 지난 23일엔 비행기와 선박운항이 전면 중단됐고, 그다음 날엔 육지로 빠져나가려는 수만 명의 관광객이 공항에 몰리는 바람에 비행기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하룻밤 더 묵을 수밖에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갇혀 많은 시간을 TV를 보면서 보냈다. 태풍 솔릭이 제주도를 거쳐 느릿느릿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로 빠져나갈 때까지 거의 20시간이 걸렸다. 공·민영이나 종편 할 것 없이 모든 TV방송이 마라톤 중계 하듯이 태풍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그 때문일까. 근래에 보기 드물게 전 국민이 경계심을 품고 태풍 경로를 주시했다. 관심의 초점은 한국 인구 절반이 몰려 살고 있는 수도권에 태풍이 영향을 줄 것인지에 쏠렸다. 이런 분위기이니 대통령이 나서서 재난 관리를 독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다행히 태풍은 수도권을 비껴갔다. 태풍이 횡단한 남부 지방도 예상외로 피해가 적었다. 폭풍우가 가장 심했던 제주도에도 과거 태풍에 비하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적었다. 태풍에 대한 예보 체제와 국민적 대비 태세가 잘 됐고, 또 막판에 태풍이 힘이 빠졌기에 피해가 적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상청 예보의 정확성을 놓고 언론의 비판이 적잖이 쏟아졌지만, 태풍이 발생 이후 경로를 추적해서 예보하는데 그 정도면 잘 한 것이 아닐까.     
이제 8월의 끄트머리에서 저무는 여름을 뒤돌아본다. 이 여름 기억에 남는 건 딱 두 가지, 즉 태풍과 폭염이다. 둘 다 이 8월에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자연 현상이다. 하지만 이 여름 개인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다면 폭염이 태풍보다 훨씬 더 두려운 존재로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올여름 서울 사람들은 섭씨 39.6도의 기온을 경험했다. 체온보다 훨씬 높은 기온에 사람들은 여러 날 고통스러워 헉헉거렸다. 잠 못 이루는 열대야 또한 고통스러웠다. 
올여름 폭염을 계기로 사람들은 에어컨이 필수품이 된 시대에 살게 되는 것 같다. 과거 에어컨은 더운 날 시원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어주는 문명의 이기였다. 에어컨을 장만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여름 더위는 좀 참고 견뎌야 할 불편한 계절 정도였다. 마음의 자세에 의해 극복할 수 있는 더위였다. 그러나 이제 에어컨은 폭염의 고통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구로 성격이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의해 지구 기온은 계속 올라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서울의 여름 기온이 40도를 깨는 것은 시간문제다. 41도의 폭염을 만나게 되는 것도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닐 것만 같다.
지구환경 문제를 국제의제로 올리고 전 세계 정상들이 모여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던 ‘리우환경회의’가 열린 게 26년 전인 1992년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21세기 가장 큰 인류의 위기로 기후변화를 경고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그야말로 머나먼 ‘21세기 문제’였다. 그 당시 경고했던 기후변화의 증상들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올해 서울의 폭염도 그 하나다. 그때 태어난 사람이 26세가 됐다.
요즘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손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21세기 어느 시점에 가면 손에 들고 다니거나 배낭에 지고 다니는 에어컨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지나고 보니 25년 정도는 정말 짧은 기간이다. 앞으로 25년이 지나면 21세기 중반에 이른다. 지난 25년의 경험에 비추어 과학자들의 얘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공상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지금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그때는 없겠지만.

▲ 김수종 /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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