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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고문으로 두 눈 잃은, 안동 최고 가문의 딸 김락 열사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02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나의 고향은 경북 안동 예안이다. 지금은 안동댐으로 인해 수몰되어 내가 살던 마을이나 학교 등은 흔적도 없다. 하지만 추억을 더듬으며 가끔 고향이라도 가는 날이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먼저 생각나 가슴 뿌듯해진다. 안동 하면 독립운동가들의 최대 성지 아니겠는가.
이 중에서 안동 최고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두 눈을 잃어가면서까지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김락 열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김락(金洛)(1862~1929) 열사는 남자현 의사와 더불어 경북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김락 열사는 1862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서 4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김락 열사의 조상은 예전에 도사(都事)를 지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도사댁으로 불렸고, 또한 사람 천 석·글 천 석·살림 천 석 등 삼천 석 댁으로도 불렸다. 그만큼 경제력과 학문을 두루 갖춘 집안이었던 것이다.
18살이 되자 김락 열사는 안동시 도산면의 진성 이 씨 문중으로 시집을 가 대갓집 며느리이자 안주인이 되었다. 김락 열사의 시아버지는 24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목숨을 끊은 영남 유림의 거두인 이만도이며, 남편은 1919년 ‘파리장서 사건’의 주모자 이중업이다.
시집간 지 6년 만에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김락 열사는 두 아들에 이어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돌봐야 했다. 그리고 1895년 을미사변 이듬해에 예안의병이 일어났는데 시아버지 이만도가 의병장까지 맡게 되며 시숙과 남편도 가담하자, 그녀는 실질적으로 집안을 이끌며 의병활동을 도왔다.
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합병이 이루어지자 시아버지 이만도는 “식민지 땅에서 무릎 꿇고 살 수 없다.” 며 단식에 들어갔고, 결국 곡기를 끊은 지 24일 만에 순국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얼마안가 이번에는 친정 큰오빠 김대락이 동생과 조카들을 데리고 만주로 망명을 떠났으며, 큰언니 가족(남편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들도 이를 따라 가버렸다. 이상룡과 김대락은 서간도에 경학사를 조직하여 만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다.
시댁 식구들 독립운동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남편 이중업은 1914년 안동과 봉화 장터에 유림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당교격서’를 돌리고, 1919년 3·1 운동 당시 서울에서 ‘파리장서’라 불리는 독립청원서를 발의하고 서명을 받다가 투옥된 후 풀려나, 이듬해 11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맏아들 이동흠은 박상진의 대한광복회에 가담해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고, 둘째 아들 이종흠은 1925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했다. 맏사위 김용환은 ‘조선 최대의 파락호’ 소리를 들으며 노름꾼으로 위장해 많은 종가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으며, 둘째 사위 류동저 역시 1920년 창립된 안동청년회에 참여해 거금 100원을 기부했다.
김락 열사는 두 눈을 잃었다. 어째서일까? 1919년 3월 17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예안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을 때, 김락 열사는 57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일경의 고문으로 그만 두 눈을 잃고 말았다.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년 뒤인 1921년 2차 독립청원운동을 준비하던 남편마저 잃고 말았는데, 실명상태인 김락 열사는 시신조차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어 둘째 아들 이종흠도 1926년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1년의 옥고를 치렀다. 홀로 남아 고통스러운 만년을 보내던 그녀는 두 번의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 김락 열사는 1929년 2월 6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런 사실은 2000년에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가 만든 고등계 형사 지침서인 『고등경찰요사』를 연구해 밝혀냄으로써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안동의 양반 고 이중업의 처는 1919년 소요 당시 수비대에 끌려가 취조 받은 결과 실명했고, 이후 11년 동안 고생 한 끝에 1929년 2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밤낮 적개심을 잊을 수 없다는 뜻을 아들 이동흠이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고등경찰요사』)
김락 열사의 집안은 친정과 시댁을 합쳐 26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함으로써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알려진 안중근 가문보다 그 수가 더 많다.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펼쳤던 한 가문의 중심에서 김락 열사는 한 아내, 한 어머니에 머물지 않고 온 겨레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 어찌 기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김 지 욱 /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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