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2 21:41:56

최초의 여성 의병대장, 윤희순 독립투사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30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일찍이 도산 안창호는 “나라가 없고서 일가와 일신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를 받을 때에 나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고 하였다.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수탈과 탄압이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일신의 안녕보다 독립을 염원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포고를 계기로 을미의병, 정미의병,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지역, 성별, 나이를 뛰어넘는 저항의 외침이었다.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국내외에서 끊임없는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여 투철한 나라사랑정신을 발휘하는 과정에서는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윤희순 독립투사 또한 그 중 한 분이었다.
윤희순 투사는 해주 윤 씨 윤익상과 덕수 장 씨의 장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시가가 모두 학문과 덕행의 실천을 강조하며 대대로 유학자를 배출했던 화서학파 집안이었기에 집안 사이의 긴밀한 교류는 혼인으로 이어졌다. 이를 대변하듯 윤희순 투사는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의 영향을 받으며 항일구국의지를 키워갔다.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시행으로 외세에 저항하는 민병의 ‘피의 항쟁’이 촉발되자, 윤희순 투사는 ‘의병가사’ 제작부터 의병활동 뒷바라지, 군자금 모금 활동, 무기 및 탄약제조·공급 등에 이르기까지 저항과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자처했다. 또한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하여 여성항일의지를 규합시킨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으로서 선두에 섰다.
당시 윤희순 투사가 『안사람 의병가』를 직접 지어 배포한 노래가사를 보면, 국가의 위기 극복을 위한 여성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아무리 왜놈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새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
윤희순 투사의 투철한 국가관은 윤희순 투사가 일본대장에게 보낸 격문 『왜놈 대장 보거라』에도 잘 나타나 있다.
“··· 더욱이 우리 민비를 살해하고도 너희 놈들이 살아서 가기를 바랄쏘냐. 이 마적 떼 오랑캐야. 좋은 말로 할 때 용서를 빌고 가거라. 이 오랑캐야. ···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너희 나라로 가거라. 너무 지나치게 하면 후회할 것이다. ··· 좋은 말로 달랠 적에 너희 나라로 가거라. 대장놈들아,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이 격문에서 윤희순 투사는 ‘이 마적 떼 오랑캐야’라는 표현으로 반일감정을 극대화시켜 나타내었고, ‘대장놈들아,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라는 표현으로 스스로 조선의 안사람으로서 당당하게 경고성 문구를 넣었다.
그 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이어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황제가 퇴위한 뒤 한국 군대마저 해산되자 각지에 흩어진 해산군에 의해 정미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때 의병자금과 탄약·군량이 부족하게 되자 윤희순 투사는 향민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해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고 무기와 탄환을 제조, 공급하였다. 한편으로는 ‘의병가’를 지어 부르게 하여 의병 훈련을 진작시켰다.
이때 퍼트린 『의병군가』를 보면 국가와 임금에 대한 충의의 실천이 곧 의병정신임이 잘 나타나 있다.
“각도열읍 병정들아 내 집 없어 서러워라. 나라 없이 서러워라, 임금 섬겨 나라 찾아 행복하게 살아보세. 왜놈 잡아 임금 앞에 꿇어 앉혀 우리 임금 분을 푸세, 우리 조선 의병 만세 만세 만만세요. 의기청년 의병 만만만세요.”
시아버지 유홍석이 1910년 8월 국치를 당하게 되어 먼저 만주로 이주하자 1911년 윤희순 가족 역시 만주로 들어가서 의병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에 이주한 이후에도 노학당, 조선독립당, 조선독립단 학교, 가족부대 등의 형태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1913년 12월 유홍석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고, 남편인 유제원 또한 같은 해 10월 회인현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윤희순 투사는 대한독립단에 가입해 투쟁하는 윤돈상·윤민상 두 아들을 포함한 자손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맏아들인 윤돈상마저 일본경찰에게 잡혀 고문 끝에 1935년 7월 19일 순국하였다.
3대에 걸쳐 의병활동의 뒷바라지를 하던 윤희순 투사는 10여 일 뒤인 8월 1일 자손에게 훈계하는 글과 일생기록을 남기고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생을 마쳤다.
국내에서 의병활동 15년, 해외에서 독립운동 25년을 줄기차게 전개했던 여성항일독립운동가 윤희순 투사의 업적과 정신은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 김 지 욱 /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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