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5 03:39:58

현대차 위기, 노동자의 위기

김 수 종
뉴스1 고문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10월 15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나라 안을 보나 전 세계를 놓고 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변화의 격랑 속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느낀다. 인류 문명 자체가 방향 전환의 시점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의 기류 속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긴박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산업 문제, 즉 먹고사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현대자동차 노사 외부자문위원회가 내린 진단, 즉 “향후 최소 20%에서 최대 40%의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노동자들에겐 그지없이 우울한 소식이고, 현대자동차엔 회사 명운이 걸린 진단일지도 모른다.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 경제의 기둥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의 대명사이고, 노동자들에겐 급여와 고용이 안정된 소위 좋은 일자리로 평가받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렇게 인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린 외부자문위원회는 현대자동차 노사 합의로 만들어진 일종의 태스크포스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임금협상 과정에서 고용안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객관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위원회 산하에 4차산업혁명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친환경차 확대와 생산자동화 등 산업 환경 및 기술변화에 따른 고용문제 등 노사 갈등요인을 사전에 대응하자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활동에 들어간 외부자문위원회는 산업환경 변화에 따른 고용영향을 연구·분석하고 고용 문제 예방 대책을 모색해서 진단서를 마련했고, 지난 4일 고용안정위원회에서 이것을 공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문위원회는 인력감축의 불가피성을 전동화(Electrification), 공유경제(Sharing), 새로운 이동수단(Mobility)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라서 어려운데, 좀 쉽게 설명하자면 전기차 및 수소차의 본격 등장과 공장자동화의 확산이 노동력의 감축과 재배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자동차산업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전기차가 대세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을 선언하고 2020년부터 전기차 생산체제로 급속히 회전한다. 유럽, 중국,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줄줄이 전기차로 갈아타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에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생명처럼 여겼던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하지 않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데 들어가는 부품 수가 3만개에서 약 2만개로 30% 이상 줄어든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배터리 산업은 이미 전기전자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게 돌아가는 부가가치가 크게 줄어드는 건 자명하다.
그만큼 노동자가 덜 필요하고 그 파급영향은 부품업체에도 그대로 전달된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조립 공정도 스마트팩토리 기술, 즉 자동화가 확산되면서 노동자가 설 땅은 더 좁아진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차와 수소차의 이중전략으로 자동차산업 패러다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사실 수소차도 기본 원리는 전기차와 비슷해서 부품이 전기차보다 약간 더 들어갈 뿐이라고 한다.
세계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 변화의 물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중국이 전기차 등 친환경차 생산과 보급에 국력을 쏟으면서 시장쟁탈전이 더욱 가혹해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대자동차 노사 모두에게 어려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 준다. 강성으로 알려진 현대자동차 노조도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위기를 인식하고 고용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국내시장에만 의존해서 살 수 없는 글로벌 회사이기 때문에 더 큰 시련이 올지 모른다.
최근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을 역임한 오명 박사를 사적인 모임에서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필요 없는 전기자동차를 얘기하면서 “내연기관 시대처럼 거대 자동차 조립회사가 꼭 필요할까요? 부품을 구입해서 맞춤형 자동차를 너도나도 생산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고 논평했다.
오명 박사는 정부 각료를 지낸 사람 중에서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육사졸업 후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전두환정부 때 체신부 차관으로 발탁되어 한국 전화시스템을 전전자교환방식으로 개혁한 사람이다. 전혀 성격이 다른 세 정부에서 과학기술에 기반을 두고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의 경륜은 기술과 행정 경험의 바탕 위에 있다. 정부나 회사로부터 자유로운 나이와 경지에 이른 그의 전기자동차 얘기는 경청할 만한 직관이 포함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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