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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주막 이야기

이만유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오재영 기자 / 1593호입력 : 2023년 03월 27일
문경새재 주막

   
酒-주막 표시등

옛날 길 떠난 나그네가 머물다 가는 주막은 술과 밥을 파는 주점이고 식당이면서 여관을 겸한 복합 휴게소라 할 수 있다. 주막은 외딴 곳에 한 두집이 있기도 하지만, 나그네가 많이 다니는 길목에는 여럿이 모여 주막거리나 주막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문경지역에서도 유곡역 주막촌, 문경새재와 돌고개 주막거리 등이 있었으며, 한양에서 과거시험이 있는 시기에는 성시(成巿)를 이루었고 특히, 술청에는 팔도 사람들이 모여 북새통이 되기도 하였다.

주막은 임진왜란 후 조령원(鳥嶺院)·동화원(桐華院) 등 관설(官設) 원(院)의 기능이 쇠퇴하고 참(站)마다 참점(站店)을 설치하여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는데, 조선 후기(19세기)에는 영남대로 등 큰길에는 10∼20리 간격으로 사설 주막이 많이 생겼다. 주막에는 나그네의 눈에 쉽게 띄도록 현대의 광고판 같은 주막 고유의 표시로 ‘酒(주)’자를 문짝 등 잘 보이는 곳에다 써 붙이거나 처마 끝에 등을 달기도 하였고 술을 거르는 데 쓰는 도구로 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 모양인 ‘용수’를 장대에 달아 지붕 위로 높이 올려 두기도 하였다.

주막은 쉼터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특히 주막에서 제일 큰 방인 ‘봉놋방’에는 입담 좋은 사람들이 밤이 깊도록 팔도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소식을 전해주는 이야기꽃이 피는 곳이었다. 

주막에서는 술이나 밥은 돈을 받지만 잠은 공짜로 잘 수 있었는데 침구는 제공하지 않았다. 특실이라 할 수 있는 작은 방은 지체 높은 양반 손님이 차지하고, 봉놋방에는 일반 백성들이 잠을 자는데 먼저 들어 온 사람이 좋은 아랫목 자리를 차지하고 그다음 들어온 사람들은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몸을 뉘었는데 때에 따라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복 없는 년은 봉놋방에 가서 자도 고자 옆에 눕는다’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생기기도 하였다. 가끔 눈웃음치는 주모가 큰 엉덩이를 흔들면서 요염한 모습으로 과객을 호리는 ‘색주가’처럼 변질한 주막도 있었다고 하며, 주막 주변에는 나그네를 상대하는 ‘들병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내외주점(안방술집)’이라 해서 여염집 아낙네가 살길이 막연하여 차린 술집으로 문을 사이에 두고 술꾼에게 순배(巡杯)로 술을 파는 술집이 생기기도 하였다.

특별한 예로 민정을 살피는 관리들이 묵기도 하였는데 이긍익(李肯翊)이 지은 ‘연려실기술’에 정승 맹사성(孟思誠)이 고향 온양에서 상경하다가 용인의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시골 선비와 ‘공 당 놀이’를 한 이야기가 있기도 하였다. “무슨 일로 서울 가는공?”, “과거 보러 간당”, “그럼 내가 급제시켜 줄공?”, “실없는 소리 말당”한 후 헤어지고 며칠 뒤 맹사성이 과장(科場)에서 그 시골 선비 곁에 슬며시 다가가 “어떤공?”하니 그가 정승인지 알아보고 얼굴빛이 하얗게 되어 “죽어지이당”했다는 이야기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인 문경새재 제 1관문과 제 2관문 사이 교귀정 못미처에도 나그네들에게 술과 밥을 팔고 잠자리를 제공하던 옛 주막터에 주막이 한 채 들어서 있다. 조선 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주막’이란 그림을 모델로 설계하여 1983년 11월 ‘조국순례 자연보도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주막에서 외상술도 먹었는데 글을 모르는 주모가 외상장부 대신 부엌 벽이나 기둥에다가 자기만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생김새와 옷차림 그리고 외상 내용을 칼로 그어 표시해 두었다. 지금이야 신용카드를 사용하지만, 한때는 단골 술집에서 현금이 없으면 손가락으로 긋는 시늉을 하거나 “그어두세요”하는데, 이 ‘긋는다’가 바로 옛날 주모에게서 비롯된 것이란다.

문경새재 주막은 삶의 애환과 체취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으로, 한 가난한 선비와 마음씨 고운 주모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금 늦은 나이에도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했던 과거시험에 낙방(落榜)하고 실의와 지친 몸을 이끌고 귀향하는 선비가 험한 문경새재를 넘게 되었다. 

노잣돈도 다 떨어진 상황에서 며칠을 굶다시피 해 몹시 배가 고팠다.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고 허기가 져 쓰러질 형편에 처했다. 마침 주막에는 장작불 위 가마솥에 국밥이 끓고 있었다. 바람결에 묻혀오는 구수한 국밥과 달콤한 막걸리 냄새에 견딜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그러나 수중엔 무일푼, 양반 체면에 구걸할 수도 없어 망설이면서 몇 차례 그 옆을 왔다 갔다 하다가 한번 사정이나 해봐야지 하면서 주모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빈손으로 가기도 뭣해서 주막 앞에 깨어진 사기그릇을 하나 주워 엽전처럼 동그랗게 다듬어서 그걸 들고 갔다. “주모! 내 어디 어디 사는 누구인데 지금 노잣돈도 다 떨어지고 배가 몹시 고프니 이 ‘사금파리’를 어음이라 생각하고 외상 국밥 한 그릇만 주시오. 내 선비로서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다음에 꼭 갚으리다. 부탁하오”하니, 초라하나 의젓한 선비를 본 주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예, 드리지요. 어서 이리로 앉으십시오.”하고는 큰 그릇에 따뜻한 국밥과 막걸리 한 사발을 내어 주었다.

선비는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고는 “주모! 고맙소! 내 다음에 이 길을 다시 올 때 꼭 들리도록 하겠소”하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리곤 1년 후 한양에 갈 일이 생겨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그 주모를 찾았다. 

그를 알 듯 모를 듯 그러나 반가이 맞아주는 주모의 손을 잡고 “내 그때 태어난 이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과 술을 먹었소. 주모 참 고마웠소”하고는 그때 음식값의 몇 배를 주고 떠났다고 한다. 그때 그 동그란 ‘사금파리 어음’이 발굴되어 옛정을 듬뿍 담고 ‘옛길박물관’에 전시되어 문경을 찾아온 관광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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