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5-04-27 13:15:28

삼국통일의 태동지(胎動地), 당교(唐橋)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
오재영 기자 / 1597호입력 : 2023년 04월 03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당교사적비 전면- 문경시청 전정
당교의 현재 모습


‘삼국 시대’의 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비해 땅도 작고 세력이 약한 나라였다. 그러나 신라는 꾸준히 힘을 길러 두 나라와 대등할 정도로 국력을 키웠으며 제24대 진흥왕(眞興王) 때는 강대국이 되었다. 제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왕이 되기 전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고구려 보장왕을 찾아가 군사 지원을 요청했으나 신라에 빼앗긴 옛 고구려 땅 계립령(하늘재)을 포함한 죽령 서북쪽 땅을 내놓으라는 조건을 걸자 이를 거부하자 옥에 가두었다. 

구금 중에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김유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 김춘추는 후에 신라 제29대 왕이 되었으나 태종무열왕 2년(655년) 고구려, 백제, 말갈 연합군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당나라 황제를 설득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게 되어 당의 소정방과 신라의 김유신이 협공하여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그의 아들 문무왕이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원래 ‘나당연합’을 할 때 당나라는 ‘백제의 영토와 평양 이남의 고구려 땅’을 신라에 주기로 했는데, 이 약속을 완전히 무시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사비성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자기들이 다스리려 했다. 그뿐 아니라 당나라는 신라를 속국 또는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라 하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鷄林州大都督)'이라고 불렀다. 

결과적으로 백제, 고구려는 물론이고 신라마저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그래서 김춘추(603~661년) 아들 문무왕은 동맹 관계를 배반한 당나라와 끝까지 싸워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한 항쟁을 시작한 것이 ‘나당전쟁’이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들과 힘을 합쳐 먼저 백제의 옛 땅을 되찾고, 설인귀가 이끄는 대군을 맞아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싸움에서 승리하여 당나라군을 완전히 물리쳤다. 

결국, 신라는 676년, 7년간의 전쟁 끝에 고구려의 옛 영토까지 다 차지하지 못한 반쪽짜리 통일이었지만, ‘임진강에서 함경남도 덕원(德源)을 연결하는 선 이남의 땅’을 차지하며 삼국통일을 이루었으며 그 후 대동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제 삼국통일의 태동지(胎動地), 당교(唐橋)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당교는 군사 및 교통 요충지로 문경시 모전동과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의 경계인 모전천에는 있었다는 나무로 만든 다리로 신라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 소정방과 당의 군사들을 죽여서 이 다리 밑과 주변에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조선 시대까지 실제로 길이 10m 정도의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으며, 이곳을 ‘당교(唐橋)’ 혹은 ‘뙤다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마을 주민 증언에 의하면 1990년대까지 이 자리에 변형된 모습의 다리를 수시로 이용하였는데 국도 3호선 도로 확장 포장으로 흔적도 남지 않고 그 자리에 모전천 물이 흐르는 콘크리트 터널이 되어있다.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고전(新羅古傳)’에 전하길 ‘소정방(蘇定方)이 이미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토벌하고 또 신라마저 치려고 머물고 있었다. 이때 유신은 그 음모를 미리 알고 당나라 군사를 초대하여 짐독(鴆毒)을 먹여 모두 죽이고 구덩이에 묻었다. 지금 상주(尙州)의 경계에 당교(唐橋)가 있으니, 이것이 그들을 묻은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중기의 문신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소정방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하였지만, 불행하게도 신라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였고 중국 당나라 왕조의 정사(正史)인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서는 ‘소정방이 건봉(乾封) 2년(667)에 죽었는데, 나이가 76세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다만, 죽은 장소는 명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송대(宋代)의 진사(陳思)가 편찬한‘보각총편(寶刻叢編)’에 ‘당좌무위대장군형국공비(唐左武衛大將軍邢國公碑)’가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소정방은 건봉(乾封) 2년(667)에 당의 서북 변경 지역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소정방의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이 난무, 오리무중, 수수께끼이지만 중국의 역사서는 당나라 대국의 장군이며 대총관이 치열한 전투 중에 전사한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허무하게 비명횡사하는 것이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역사이기에 숨기려고 상세한 기록 없이 그저 ‘소정방이 죽었다’라고만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에는 소정방의 무덤도 없다.

그리고 일연이 ‘임술년(壬戌年, 662)에 신라가 소정방과 군사들을 죽였다면 그 후일인 무진(戊辰, 668)에 어찌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당교의 소정방 피살사건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일연이 의심한 문제는 논외로 하고 ‘신라 고전’에서 전하는 내용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똑같이 기술하였고, 당교가 함창현의 북쪽 6리에 있다고 장소까지 명시하고 있으니 이를 정사로 믿을 수밖에 없다.

문경 시민은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속지 않고 야욕을 품은 소정방과 당군을 문경 땅에서 멸(滅)한 역사적 기록을 믿고 삼국통일의 성업(聖業)을 이룩함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교훈으로 삼고자 1990년 7월 3번 국도 옆 당교가 있었던 자리에 당교사적비(唐橋史蹟碑)를 건립하였다. 지금은 문경시청 전정(前庭)으로 이설(移設)하여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민원실 앞에 세워두고 문경이 호국의 성지(聖地)임을 알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전설이나 단순히 먼 옛날 역사 속 한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김유신 장군이 비밀첩보를 입수하여 극비작전을 은밀히 추진, 간계를 품은 ‘나당 연합군 대총관 소정방’과 수하 군사들을 죽임으로 당나라의 침략 예봉(銳鋒)을 꺾어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초석이 되어 ‘나당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것에 역사적인 가치를 두어야 한다. 

만약 문경 당교에서 김유신 장군이 소정방을 죽이지 못하고 그가 살아서 그의 의도대로 신라를 공격하였다면 삼국통일의 실현도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 의의는 대단히 큰 것이며 역사를 바꾼 중요한 전투이다. 그러므로 당교는 삼국통일의 태동지(胎動地)라 하는 것에 대해 이의(異意)가 없을 것이다.

1,300여 년 전 이 당교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문경의 지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교(唐橋)는 순수한 우리말로는 ‘되다리’인데 경음화 현상으로 ‘뙤다리’가 되었고 ‘때다리, 띄다리, 띠다리’라고도 했는데 이는 중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되놈, 뙤놈, 때놈, 떼놈, 뛔놈 등과 같이 ‘당(唐)’이 ‘때’가 되고 ‘교(橋)’는 그대로 ‘다리’로 ‘때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문경시청과 그 인근이 모전동(茅田洞)인데 이 모전(茅田)은 당나라 군사가 밭에 묻혀 있다는 의미인 ‘띠밭’, ‘띄밭’의 한자 의역(義譯)이다.

그리고 앞의 기술대로 김유신 장군이 소정방의 간계를 미리 알아차리고 당나라 군사를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대접하는 척하며 술에다 짐독(鴆毒)을 넣은 짐주(鴆酒)를 먹여 소정방과 당군을 죽였다고 하였는데, 이 짐독은 짐새의 깃에 있는 맹렬한 독이다. 

짐새는 실제로 생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 남방 광둥(廣東)에 사는 독이 있는 새라고 하며 몸은 붉은빛을 띤 흑색, 부리는 검붉은색, 눈은 검은색인데 온몸에 독기가 있어 배설물이나 깃이 잠긴 음식물을 먹으면 즉사한다고 전해 온다. 고서의 기록에 보면 짐새는 독사를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강한 독을 가지고 있으며, 천년 묵은 독사가 새(鳥)로 변했다는 말도 있다. 그 독이 너무 맹렬해서 짐새가 날아갈 때 그림자만 비쳐도 그 음식물이나 물그릇에 독이 스며들어 사람이 먹거나 마시면 바로 죽는다고 하는 맹독을 가진 새다.

글을 맺으면서 결과적으로 자주통일이 아니고 외세(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것에 대한 대가(代價)로 지금의 만주 일대의 고구려 땅이 대부분 중국의 영토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쉬운 일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는데...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였다면 저 넓은 대륙이 우리 땅이 되었을 텐데 하는 꿈을 꿔 본다. 태조 왕건은 자기 힘으로 후삼국을 통일하였듯이 앞으로 있을 남북통일도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우리의 힘으로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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