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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 1710호입력 : 2023년 09월 25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란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냥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행적이나 그 사람이 가진 품성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하는 의견과 근거들을 제시하고, 그런 이유를 설명하거나 강조하면서,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허점이 없는지 살펴보는 역할을 한다. 반대 측에 서서 반대의견을 내는 만큼, 역설적으로는 어떤 사람의 가장 확실한 검증자인 셈이다. 당연히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담당하는 대상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어야 하며, 섣부르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국회 청문회’가 그렇다. 후보자를 내세우기 전에 그 후보자의 반대편에서 사전에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바로 ‘악마의 대변인’인 역할이다. 법조계에서는 ‘악덕 변호사’를 일컫기도 한다는데, 재판을 대비한 자신들의 모의 법정에서, 상대측 변호사 역할을 맡는 사람에게 이런 명칭을 쓴다고 한다. 최근에는 정치학이나 행정학, 심리학 등 많은 분야에서 ‘집단사고의 오류 해결 방법’으로 이 ‘악마의 대변인’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문헌에서는 세계대전에서 나온 어느 국가 정보부에도 비슷한 제도를 실행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모사드’는 뮌헨 올림픽 참사와 제4차 중동전쟁에서 기습당한 후, 10명의 정보 담당자 중 9명이 다 같은 의견을 내더라도 1명은 의무적으로 반대하게 했다고 한다. 혹시나 모를 변수가 무시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단 반대하게 하여 그 논리를 놓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악마의 대변인’이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는 기록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공과를 평가하기 어렵다고 여겨지거나, 또는 혹독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고 한다. 또 성직자만이 이 직무를 수행하게 한 것이 아니라, 세속 학자들에게 위탁한 경우도 있다고 하며, 때로는 무신론주의자나 반종교 계열의 인사까지 이 직무를 맡겨 그야말로 철저한 검증 수단으로 삼았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복을 앞두고, 손꼽히는 지식인이자 무신론계의 거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을 요청한 것이라 한다. 히친스는 평소에도 마더 테레사 수녀에 대해 비판을 가한 일이 있어 악마의 변호인으로 손색없다는 평가인데, 히친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이런 검증 작업은 가톨릭에 대한 호의적 입장이나 무신론적 입장을 떠나서, 사람을 검증하는 매우 좋은 시스템이며 이런 과정을 통과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반대 전담의 순기능’이다, 이런 ‘악마의 대변인’ 제도를 활용한 좋은 경영사례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잔디 깎는 기계 회사인 토로(TORO)에는, 굵직한 경영 사안에 대한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그에 대해 완전히 반대되는 시각에서 분석하는 ‘반대전담팀’을 상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시트린 그룹(Citrin Group)도 ‘Blocker(블로커)’라는 독특한 직무 수행자를 두고 있는데, 그 주된 임무는 회사의 모든 사안에 반대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문제를 사전 심사숙고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오류를 줄여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 정치에도 이런 효율적인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걱정이 앞서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더욱 키워가는 것으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단순히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과격한 집단 행동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듣기 싫은 말이지만 옳은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에게 듣기 좋은 표현이긴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거짓인 줄 알지만 내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목격하고 있다.

어떤 조직이나 정치적 집단이 잘못된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빈틈없이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우리는 경험으로 깨달은 바 있다. 그 때문에 ‘악마의 대변인’은 일반화의 오류를 막아주고, 집단사고가 가져올 수 있는 잘못된 의사결정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방법이다. 참다운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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