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2 11:00:03

'이징옥 장군' 대금 제국을 세웠다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김경태 기자 / 1979호입력 : 2024년 11월 28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원봉 이징옥(圓峯 李澄玉)은 1399년 경남 양산 하북면 삼수리에서 태어났다. 중추원사를 지낸 이전생(李全生)의 둘째 아들로 형은 징석(澄石) 동생은 징규(澄珪)다. 어머니는 3장수를 잉태 할 때마다 산이 걸어와 속옷 가랑이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본관은 인천 이 씨로 소성백 이허겸(李許謙)의 후손인 할아버지 이만영(李萬英)은 교려말에 벼슬을 시작해 조선 개국 후 보조공신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됐다. 아버지 이전생은 조선조 태조 때 공조전서를 거쳐 세종 초에 양산군에 봉군되고 중추원 영사로 퇴직한 후 양산부원군으로 진봉됐다.

이징옥은 1414년 갑사로 출사하여 1416년 태종 때 부사직에 재직 중 무과에 급제해 부거채장에 보임됐다. 1418년 태종이 친시하는 무과에 1등으로 급제해 사복시소윤으로 임명되고 이후 약관의 나이에 영북진 첨절제사가 됐다. 1424년 경원진 첨절제사로 야인의 침략을 격퇴하고 1425년 절제사로 승진했다. '소년 절제사'라는 칭송을 받았다. 1436년에는 회령부 판사로 여진족 추장을 처형하고 그해 경흥도호부 판사가 됐으며 이후 함길도 절제사로 임명됐다.

이징옥은 궁술과 기마술, 창던지기에 능했다. 1430년까지 여진족이 변방을 침략 노략질하고 도적이 출몰할 때마다 변방 방비에 큰 공을 세웠다. 세종은 특명을 내려 9년만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를 만나보게 하였다. 조선에 파견된 윤봉이 무리한 공납을 요구하자 명사신에 대한 당당한 태도로 대응해 오히려 자신의 물의로 본국의 처벌을 두려워한 윤봉이 장군에 대한 문책 관련 조정의 사면을 요청하는 일이 있었다. 1432년 병조참판이 되었고 1433년 영북진 절제사, 1436년 회령 절제사, 판경흥도호 부사, 함길도 절제사 김종서의 부장으로 6진 개척과 성곽 수축을 2년만에 완수했다.

1436년 회령부 판사로 재직 중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의 소굴로 처들어가 추장을 사살했다. 이 장군은 용감하고 위엄이 있어 야인들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됐다. 인품이 엄격하고 청렴하여 야인의 물건에 절대 손대지 않았다. 여진족들은 그를 '어금니를 가진 큰 돼지'로 불렀다. 1435년 이후 4군6진이 안정되자 대여진 정책이 유화로 기울어 졌다. 1438년 장군이 모친상을 당하여 경원 부사를 사직하고 함길도에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100일만에 경상도 절제사로 임명되어 북방으로 돌아왔다. 이후 지중추원사를 거처 1452년 특명으로 숭정대부로 승진 판중추원사가 되었다.

이징옥은 1453년 단종 1년에 다시 함길도 절제사로 부임했다. 그해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정권을 잡자 김종서의 천거로 도절제사가 된 이징옥을 파면시키고 박호문을 임명했다. 수양대군 일파는 김종서의 부관인 이징옥을 역모의 가능성이 있다하여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한 이징옥을 파직시켰다. 장군은 일단 박호문에게 자리를 인계하고 호위병 약간을 거느리고 상경하였다. 도중에 조정에서 일어난 정변 소식과 김종서의 암살 소식을 듣고 이에 분개한 이징옥은 회군하여 박호문을 죽인다.

병마를 이끌고 종성으로 이동해 대금제국을 세우고 황제의 위에 오른다. 군사지휘소를 남만주의 오국산성에 두고 그곳에 도읍을 정했다. 건국을 알리는 격문을 돌려 여진족과 변방의 각 읍에 동참을 요청했다. 이징옥이 두만강을 건너기위해 종성에 머물던 중 거사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종성 부사 정종과 호군 이행검 등이 변절하여 이징옥을 습격하여 두 아들과 함께 살해했다. 그때 이징옥의 나이는 55세였다. 이로 인해 형인 징석과 동생 징규가 처형과 멸족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세조의 극진한 대우로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높은 벼슬을 하사받았다.

후일 정조 때 재상인 채제공은 이징옥이 단종을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므로 역모는 아니라고 하였다. 이징옥의 장남인 자원과 차남인 윤원은 살해되었고 딸들은 노비로 분배되었다. 셋째 아들 당시 8세 였던 연원(淵源)만이 유모의 등에 업혀 경주 상신에 간신히 피신해 목숨을 건지고 태엽(台燁)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관을 초계라 칭하고 세계를 이어갔다. 위대한 유모의 사랑과 헌신은 후손 만대에 전해 질 것이다. 계룡산 동학사 숙모전과 영월군 장릉 단종 배식단 사우에 배향됐다. 1698년 숙종 때 신원상소가 올려졌고 1791년 정조 때 관직이 회복되고 충강(忠剛)의 시호가 내려졌다. 정조의 사후 관직이 추탈되었다가 1908년 내각 총리대신의 건의로 복권되어 죄적이 삭제되고 명예회복이 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경남 양산군 하북면 상삼수리에 이징옥 3형제의 사적비가 세워지고 1990년 이후 원봉 이징옥에 대한 평가와 재조명을 위한 공론이 일어나고 있다. 이징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 관점이 있다. 첫째 경원 첨절제사와 함길도 절제사 등 공직을 맡아 함길도 변방의 수비와 여진족 토벌, 6진의 개척에 혁혁한 공을 세운 뛰어난 무장이다. 둘째는 동북 변방의 야인들이 두려워한 위엄과 청렴성을 지니고 가산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 위국의 충신이다. 셋째 군사를 일으킨 것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거부하고 단종을 위한 충신의 도리를 다함이며 불사이군의 충절의 표상이다. 넷째 중국에 대한 사대를 하던 시절에 북방에서 역사상 최초로 대금황제국을 세우고 단기간이나 황제의 위에 올라 천하통일의 대망을 제시했다. 이징옥 장군은 55년 인생의 절반을 조국을 지키기위해 북방의 최 전방에서 무장으로 멸사보국했다. 조정의 정변에 의해 희생된 장군의 최후가 너무도 애통하다. 꿈틀미디어 대표인 이동한 기자는 인천이씨 충강공파 19대 후손이다. 이징옥 장군의 조부 이만영 할아버지가 충강공파의 1대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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