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은 박완서 작가의 기행 산문집이다. 이 글 속에는 인생의 여행가방이 나온다.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이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 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라고 하고, 자신의 영혼을 담고 살아온 육신을 남루한 여행가방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생의 여행가방을 최후에 열어 볼 분을 주님이라고 하였다. 모든 것을 두려움 없이 열어 보이면 혹시 주님께서 그래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어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인생은 시한부 여행이다. 내 영혼을 싣고 다니는 육체는 여행가방이다. 여행 가방에 필요한 것을 담았다가 버리기도 하고 넣고 다니기도 한다. 살고 있는 집에도 생활 용품이나 귀중품이라고 해서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 많다. 그 집도 언젠가는 두고 가야할 여행가방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생동안 경험했던 일들이 불랙박스처럼 내 몸속 어딘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그 것도 나의 육신이라는 여행가방에 담고 있는 삶의 업적이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와 학생들을 가르쳤던 강의, 글로 표현한 작문, 촬영한 사진과 영상도 내 인생의 여행가방에 들어있는 행적이다. 종교인은 언젠가 내 인생이 끝나면 여행가방에 담겨있는 것이 내세에서 그대로 공개가 되어 선과 악으로 평가를 받고 천당과 지옥으로 내세의 거처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누구라도 자기 인생의 여행가방에는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담고 싶을 것이다. 지금까지 들고 온 여행가방은 너무도 남루하고 창피한 내용물이 담겨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좋은 물품과 사연을 담아보려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끝날이 언제 닥쳐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전에 시한부 인생 여행가방을 점검해 볼 일이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세월은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하였다(逆旅過客).
인생은 유한하고 시한부다. 그래서 인생의 무상에 관한 사자성어가 많이 만들어 졌다.
풀잎의 이슬 같은 인생이다(草露人生), 인생은 한바탕 봄꿈이다(一場春夢), 인생은 남쪽 가지의 꿈이다(南柯一夢),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다(浮生若夢), 흰 망아지가 빠르게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白駒過隙), 나비에 관한 장자의 꿈과 같다(胡蝶之夢), 눈위의 기러기 발자국이다(雪泥鴻爪), 조밥 짓는 사이의 꿈이다(黃梁之夢), 꿈속에서 꿈을 점친다(夢中占夢),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이다(屠所之羊), 잠시 베개를 빌려 잠잔 것이다(한鄲之枕), 홀연 눈앞 새가 지나감이다(笏如鳥過目)
고사가 담긴 한자성어들을 보면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인생은 잠시 꾸는 꿈이다.
산다는 것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의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生卽一片雲起 死卽一片雲滅) 그래서 인생은 구름이요 이슬이다. 잠깐 꾸는 꿈이요 지나가는 바람이다. 저 언덕에 도달하고 저 나라에 입성한다는 것은 가보지 않고 확신하기 어렵다.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보편화된 길은 아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확고한 내세의 진로가 된다. 믿음은 주관적이며 사실을 뛰어 넘는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소멸된 후에도 영원한 삶이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살면 된다. 지금이라도 남루한 내 인생의 여행가방을 내가 먼저 점검하자. 더 좋은 것을 집어넣어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도록 하는 수 밖에 없다. 언젠가는 허망한 이 여행가방을 놓아버려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말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내 인생의 여행 가방 관리를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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