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14년 승려 자장의 건의에 의해 건립됐다. 643년에 시작해 645년에 완공됐다. 1층은 왜국과 2층은 중화(당나라), 3층은 오월(남중국), 4층은 탁라(제주), 5층은 응유(백제), 6층은 말갈, 7층은 단국(거란), 8층은 여적(여진), 9층은 예맥(고구려) 등을 제압한다는 상징으로 설계됐다. 철판 위 42척과 이하 183척을 합하면 225척으로 80m의 초대형 건물이다.
목탑은 백제에서 불러온 기술자인 아비지가 주도했다. 아비지는 백제의 장인으로 목탑 중건의 기술적인 총괄을 했다. 이 아비지와 신라의 김용춘이 소장 200명을 거느리고 일을 주관하였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전신 사리 수십 알을 황룡사 목탑의 기둥에 봉안했다. 당나라에서 자장은 신인의 계시로 "신라여왕은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어 주변에서 괴롭히는 것이니 신라에 돌아가 커다란 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를 복속시킬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 삼국을 통일시킬 수 있다는 건의를 선덕여왕에 드려 목탑을 조성했다.
앞면과 옆면은 모두 7칸의 평면 형이였고 건물 내부는 외진주 초석 배치와 같은 주열상에 모두 초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심초석을 중심으로 4천주 초석과 제1내진 초석, 제2내진 초석, 외진주 초석의 순으로 초석들이 놓여 있었다. 그 당시 황룡사에는 대규모의 법회가 열렸다. 백고조회와 팔관회가 거행되어 황룡사는 호국을 기원하는 국찰의 기능을 수행했다. 법회에는 역대 왕들이 친히 행차했으며 원광과 안홍, 자장, 원효 등 많은 고승이 황룡사에 머물면서 경전을 강독하는 강경을 행했다. 황룡사에는 성덕대왕 신종 보다 4배가 더큰 신종이 있었다고 한다.
경문왕 11년 871년에 탑을 중수했다. 그 당시 중수 사연을 적은 내용에 보면 사리 장치 품목과 안치 장소가 밝혀져 있고 사리함의 신장상에서 연대를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이후에 목탑은 벼락으로 인하여 여러번 소실되었다가 중수되기를 반복하였다. 1238년 몽골 군대의 침입으로 탑과 절, 장육존상, 전각이 모두 불타버린 이후 중수되지 못했다. 현재는 탑의 초석만 남아 있다.
고려 중기 문장가인 김국기가 황룡사 9층목탑에 올라 지은 시 <황롱사>가 있다. "층층이 사다리 휘감아 하늘로 오르려 하네, 일만 강과 일천 산이 한 눈에 들어오네, 동도를 굽어 보니 수많은 집들이 벌집이나 개미집인양 아득히 보이네" 당시 동서양의 최대 사찰이였으며 9층 목탑 또한 최대의 위상을 자랑하는 탑이였다. 9층 목탑은 목재를 이용한 건축 기술의 결정체였다. 목재의 내구성과 탑의 안정성을 위한 정교한 구조 설계는 신라인들의 뛰여난 목재 가공 기술의 우수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9층 목탑은 신라시대 건축 기술의 예술성과 불교 건축의 정수이며 당시 신라의 국력과 불교신앙의 위상을 드높이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이다. 9층 목탑은 웅장한 외관과 화려한 장식으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며 신라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상징적 중심 존재였다. 1963년 황룡사지가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됐다. 2000년에 경주역사 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황룡사와 9층 목탑의 복원을 위해 많은 학자들이 고증을 하고 정책적 추진을 하고 있지만 찬란했던 황룡사와 9층 목탑, 금당의 사지에는 돌로 된 초석 유물만 남아 있다.
방문객에게는 경주 황룡사지 현장에서 디지털 패드를 이용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실물 크기로 체험이 가능할 뿐이다. 신라는 자장법사의 계시를 따라 9층목탑을 건립한 후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했다. 그후 재난으로 목탑이 무너졌으나 중수를 했으며 고려시대 몽골의 칩입으로 완전히 소실된 후 재건하지 못했다. 승유억불 정책의 조선 말기에 일제 압박을 받고 남북 분단을 겪고 있다. 남쪽 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정체로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는 경제부흥을 했다. 그러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완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좌우의 분쟁과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자살률과 이혼률, 교통사고률이 OECD국가 중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먹고 살기는 좋아졌지만 인성은 매마르고, 경제는 부흥됐으나 도덕은 쇠락하고 말았다. 가난하지만 정답고 인간답게 살던 때가 좋았다. 신라시대 수도인 서라벌의 황룡사에 거대한 목탑을 세운 대의가 삼국을 통일하고 주변 9한의 침략을 막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있었다. 9층탑의 세움이 단순한 건축을 넘어 신라국민의 민심을 하나로 모움이요 집단의지를 결집하는 불사이며 사역이였다. APEC 국제 행사가 열리는 천년고도 경주에 세웠던 9층탑을 한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다시 세워야 한다. APEC 회원국 모든 국가도 처해있는 난관을 극복하기위해 9층탑을 세우면 된다. 그 나라에 환란이 물러가고 태평 성대를 위해 온 국민의 맘과 힘을 모우는 9층탑을 세우면 평화의 지구촌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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