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2025년 APEC정상회의가 천년의 도읍 경주에서 열렸다. 세계가 다시 이 도시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역사적 유산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경주를 동서 문명을 잇는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원형을 간직한 도시로 보는 새로운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26일 신경주대학 웰빙센터에서는 ‘천년의 수도 경주, 실크로드의 출발지’라는 주제로 국제포럼이 열렸다. 한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일본 등지의 석학들이 참여한 이 자리에서 파비아대학교 마르코 말라고디 교수는 “신라가 로마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동단 출발지였다는 문헌과 유물이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증거가 발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실크로드를 통한 국제 교류가 신라문화의 세계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라와 서역의 교류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중국 둔황과 중앙아시아의 유적지에는 신라 귀족의 흔적이 남아 있고, 경주의 고분에서는 로마제국의 유리세공품, 서역인의 토용, 중앙아시아풍의 마부상이 출토되었다. 신라 금관의 문양이 시베리아 스키타이족의 숭목사상과 닮았다는 분석도 있다. 경주는 이미 천년 전 세계 문명의 경계가 스며든 국제도시였다.더 주목할 점은 신라의 정치 제도다. 왕 이전에 백성이 있었고, 권력 이전에 합의가 있었다.
신라 건국 이전부터 시행된 화백제도는 여섯 부 촌장이 만장일치로 국가 중사를 결정하는 협의체였다. 이는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막고 공동체의 합의를 중시하는 제도였다. 서라벌을 중심으로 각 사령지를 돌며 회의를 연 방식 또한 지역 균형과 참여를 고려한 초기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평가된다. 이 같은 합의의 정신은 신라 천년 왕조의 기반이 되었고, 원효의 화쟁사상과 장보고의 국제 해상무역으로 이어졌다.
청년들이 심신을 수련하며 예술과 무예를 익혔던 화랑도의 전통은 오늘날 K-컬처로 재현되고 있다. 신라의 문화 DNA가 세계를 매료시키는 한류의 뿌리라는 해석도 무리가 아니다. 경주는 단순한 유적의 도시가 아니다. 신라의 민주적 전통, 국제적 교류의 기억, 그리고 예술의 정신이 겹겹이 쌓인 ‘천년의 미래도시’다. APEC 정상회의는 그 역사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동서 문명의 만남이 다시 경주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