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우리나라에서 불교 유적이 가장 많이 있는 산이다. 북쪽 금오산과 남쪽 고위산을 주봉으로 남산 전체 크기는 남북 약 10km 동서 약 4km의 산이다. 금오산 정상은 466m, 고위산 정상은 495m다. 지형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 심각형의 모습이다. 북으로 뻗어내린 산맥에는 상사암, 해목령, 도당산 등의 봉우리가 있고 남으로는 고위산이 두드러 진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과 박혀혁거세의 궁궐지가 있었다고 하는 신라 구가의 발생 지역이다. 불교를 공인한 528년 법흥왕 15년 이후에는 불교 신앙의 중심지가 됐다. 40여 곳의 골짜기에는 100여 곳의 절터와 80여 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 등 다양한 불교 문화제가 남아 있다. 신라 불교 문화를 폭 넓게 볼 수 있는 노천박물관으로 불린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뉘며 동남산 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 서남산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서남산 계곡은 2.5km 내외이고 동남산은 가장 긴 봉화골은 1.5km 정도이다.
남산은 신라 사령지 중에 한 곳으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국사를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고 한다. 남산에 얽힌 전설과 영험의 사례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신라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한 날 남산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사람들은 보지 못했으나 이는 나라의 장래를 두고 경고한 것인 줄 모르고 왕은 이를 보고 상서한 일로만 생각했으며 방탕한 생활이 심해져 나라는 마침내 망했다.
신라인은 남산을 호국의 보루로 높이 숭배했다.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남산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남산의 왕정골은 남산의 정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린 산맥의 첫번째 계곡으로 최치원의 상서장이 있고 왼편으로 도당산이 솟아있다. 골짜기 입구에서 200m 쯤 되는 곳에 절터가 있고 이곳에서 석조여래입상이 있었으며 현재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왕정골 입구 남천의 남쪽 기슭에 있었던 인용사는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친동생인 김인문을 위해 지은 절이다.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인문의 안녕을 빌기위해 관음도량을 지었고 671년 김인문이 귀국길에 죽자 미타도량으로 바꾸고 명복을 빌었다.
왕정골 천관사지는 김유신을 사모하던 기생 천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다. 지대석의 조각, 탑재, 주춧돌 등이 널려 있으며 근래에 삼층 석탑을 세웠다. 왕정골 상서장은 최치원이 살았던 집이다. 효공왕 때 최치원은 왕건의 뛰어난 인격을 흠모하며 "신라의 계림은 낙엽이 지고 고려의 송악에는 솔이 푸르다"는 글을 올렸다.고려 건국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태조에게 상서를 올린 곳이며 문창후최치원상서장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남산의 절골은 상서장에서 남산리로 가는 도중에 있다. 양지마을 동편에 절터가 남아 있다. 황룡사구층목탑지와 망덕사목탑지, 사천왕사목탑지 등과 함께 신라시대 대표적인 목탑지다. 남산의 부처바위골은 남산의 동쪽 기슭 인왕리 입구에 있는 두 곳의 절터다. 그 곳에서 남쪽으로 올라가면 큰 바위가 있고 보물 경주남산불곡석불좌상이 있다. 불상은 자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하여 얼굴 모습은 단아하여 여성적이며 세련된 조각 수법을 나타냈다. 남산 탑골은 부처바위 입구에서 300m쯤 동남쪽으로 가면 탑골의 입구에 옥룡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그뒤에 거대한 암석에 보물로 지정된 탑곡마애조상군이 있다.
남산 탑골 마애불상군은 북면 바위의 중앙에는 여래좌상이 있고 그 양쪽으로 9층과 7층 목탑이 조각되어 있다. 여래상 위로 천개와 천인들이 날아 오는 모습을 조각했다. 남면 바위에는 오른 쪽 바위에 삼존불상과 보리수가 새겨져 있고 왼쪽 바위에는 감실 안에 앉은 여래상이 있다. 감실 불상 앞에는 여래의 입상이 서 있는데
머릿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남산 탑골 석조여래입상과 삼층석탑은 남면 바위 앞에 2.2m 높이의 불상이 있다. 얼굴은 반 이상 파괴되었고 목에는 삼도(三道)를 표현하였고 옷 주름은 복부 부근까지 늘어뜨렸다. 입체적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불상이다. 그 앞으로 석등의 대좌로 보이는 석물과 삼층석탑이 있다.
남산 미륵골에는 보리사와 보물인 미륵곡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불상은 연꽃 무늬의 밑받침에 간석을 세우고 다시 연꽃무늬의 팔방연화대를 올렸다. 그위에 2.24m의 여래좌상을 안치했다. 얼굴 모습은 온화하고 손은 항마인이다. 보리사 입구에서 동쪽 300m 지점에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원만한 얼굴 모습에 옷 자락이 두 무릎 사이까지 늘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남산에는 천암골과 철와골, 국사골, 오산골, 대지암골, 쓱드듬골, 승소골, 천동골, 봉화골, 봉화골 칠불암, 봉화골 신선암마애보살상, 봉화골 봉수대가 있다.
서남산에는 열암골과 열암골 석조여래좌상, 열암골 마애여래좌상, 천롱골, 용장골, 비파골, 약수골, 삿갓골, 삼릉골, 선방골, 기암골, 유느리골, 포서골, 장창골, 식혜골 등의 계곡이 있으며 계곡 마다 입불상과 좌불상, 훼손된 불상 등이 있고 석탑들이 있다. 수 천년 동안 비바람과 한설을 맞으며 남산을 지키고 있다. 국보 마애불상군을 비롯한 11개 보물과 포석정터와 나정, 삼릉을 비롯한 12개의 사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입골석불, 약수골 마애입상을 비롯 9개의 유형문화유산, 1개의 중요 민속자료가 있다.
남산은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과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신라의 오랜 역사와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 승화된 곳이다. 경주 남산을 보아야 신라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도읍의 시내는 피안이라면 남산은 피안이다. 속세가 괴로우면 남산의 불상을 찾아 소원을 빌면서¿ 영락의 길을 갔다. 영생불사 극락왕생을 원하는 사람은 남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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