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3 02:00:07

'녹명' 사슴 울음소리 듣고 싶다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김경태 기자 / 2269호입력 : 2026년 03월 10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녹명(鹿鳴)은 ‘사슴이 운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단순히 자연 속에서 들리는 동물의 울음소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녹명은 오래된 동양 고전 속에서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공동체의 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전해 왔다. 그 어원은 중국의 고대 시가집인 시경 가운데 '소아(小雅)'편에 실린 ‘녹명’이라는 시에서 비롯된다.

이 시의 첫 구절은 “녹명식식(鹿鳴食食) 야지호빈(野之蒿蘋)”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들판에서 사슴들이 서로 울음소리를 내며 풀을 뜯는 평화로운 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사슴은 먹이를 찾기위해 무리를 이루며 먹이가 생기면 서로를 부르며 함께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 즉 사슴이 서로 부르는 울음소리는 이웃을 부르는 소리다.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웃과 친구를 초대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는 소리로 비유되었다.

옛날에는 덕 있는 사람이나 인재를 초청해 잔치를 베풀 때 ‘녹명’의 노래를 불렀고,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을 축하하는 잔치를 ‘녹명연(鹿鳴宴)’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연회가 아니라 인재를 존중하고 서로를 예로 대하는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녹명은 결국 “함께 부르고 함께 나누는 사회”라는 의미를 담은 상징적 언어였던 셈이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면 녹명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너무 많다. 사회 곳곳에서 이해 관계가 충돌하고,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가 심화되면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서로 협력해야 할 사람들이 경쟁과 대립 속에서 등을 돌리고,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내세우면 싸우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때로는 극단적인 대립과 파괴적인 참상을 초래하게 된다.

동양 고전에서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살타아생(殺他我生)’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남을 죽이고 내가 산다는 뜻으로, 서로를 제거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경쟁의 논리를 말한다. 오늘날의 사회적 갈등과 분쟁 역시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 사회가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와 다름 없는 경쟁과 살육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살타아생’의 논리가 아닌 ‘위타공생(爲他共生)’의 원리가 필요하다.

사슴이 먹이를 함께 먹기 위해 친구를 부르는 울음소리를 낸다는 녹명의 교훈은 감동적이다. 오늘의 우리가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뜻깊은 명언이다. 사슴의 울음은 싸움을 부르는 소리가 아닌 서로를 부르는 소리이다. 함께 모여 먹이를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신호이다. 이 단순한 자연의 현상 속에는 인간 사회가 지향해야 할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공동체는 경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를 부르고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상생의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녹명의 울음은 결국 화합의 소리이며 공존의 메시지이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오히려 서로를 불러 모으고 지혜를 나누며 공동의 미래를 함께 모색할 때 사회는 더 큰 힘을 얻고 번영하게 된다.

사슴이 들판에서 서로를 부르며 울던 그 오래된 자연의 소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녹명의 울음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함께 부르고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것이 이기주의에 빠진 분쟁과 살육의 시대를 넘어 공동체의 극락을 여는 길이다. 사슴이 먹을 것을 놓고 친구를 부르는 울음 소리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 내가 먼저 녹명 소리를 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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