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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위 학술발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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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아리랑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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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아리랑학교-서울 인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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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양주시 율정마을 사할린동포회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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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유 |
"아리랑 고개, 도대체 이 고개가 무슨 고개인데 ‘와 이리 넘기가 힘드노!’"
지역 리더의 아리랑에 대한 외면, 아리랑이 일회용 치적 거리인가? 필요 없으면 폐기 처분하는 물건인가? 관련 단체와 소속인들의 독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시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리랑 3대 정신이 무색한 배척과 불인정, 아리랑인끼리의 갈등과 싸움까지. 참으로 못난 모습에 아리랑이 울고 있다.
2017년 6월 29일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이하 아도위)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을 존중한다.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이 문경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리랑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한다. -아리랑 관련 사업에 문경시민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문경새재아리랑 전승자를 경북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야 한다. -문경새재아리랑 보급, 전승과 공연, 교육 등 체계를 구축한다. -아리랑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한다.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아도위가 창립된 지 벌써 8년, 그런데 우리 ‘문경새재아리랑’의 강은 너무도 천천히 흘러간다. 단언컨대 우리가 살고 있는 문경의 정체성과 문화의 뿌리는 ‘길’과 ‘아리랑’에 있다고 확신한다.
문경은 하늘재, 문경새재, 이우릿재, 영남대로, 토끼비리 등 옛길이 있고, 근현대에 생긴 지방도, 국도, 철도, KTX까지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길의 요충지이다. 그 길을 통해서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었다.
아리랑은 우리 지역 토속민요인 ‘메나리토리(문경 아라리, 문경새재소리)’가 문경새재아리랑으로 전이되어 오는 수 세기 동안, 민초들의 가슴속에 깊이 스며들었고, 고난의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낄 때마다 함께하며 대대로 불러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왜? 아도위를 창립하고 활동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대다수 국민이 문경에 ‘문경새재아리랑’과 ‘아리랑고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문경새재 등 주요 관광지에서‘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열면, 관광객들은 “어! 문경에도 아리랑이 있네” 하며 생소해한다.
외지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문경시민이 우리 아리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한 소절이라도 부를 줄 아는 시민은 더더욱 보기가 어려웠다. 아리랑은 가치의 높낮이나 서열이 있을 수 없지만, 이른바 가장 활발한 아리랑 전승 지역(정선, 진도, 밀양)에서는 어린 학생이나, 논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 남녀노소 누구를 만나더라도 마이크를 갖다 대고 “아리랑 한번 불어보실래요!” 하면 주저 없이 모두 목청을 높여 부른다.
그 모습이 부러웠고, 위기감을 느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시민이 직접 나서자!” 그렇게 해서 8년 전, 아도위 위원 50여 명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 가며 열성을 다했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아리랑을 보급하고 전승하는 활동을 펼쳤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영구 귀국 사할린 동포들을 만나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을 아리랑으로 달래주었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 인사동에서, 국토의 상징 울릉도, 독도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아리랑을 목이 터지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진도, 정선, 밀양, 춘천 등 많은 아리랑 발생지를 찾아가 우리 아리랑을 전국적으로 홍보하는 등의 활동으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고 자부하고, 또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본 고장인 문경보다도 외부에서 더 그 성과를 인정하고 높게 평가한다. 자랑이 아니라, 대단한 일을 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문경새재아리랑은 어떤 아리랑인가? 그 역사성과 문화적 중요성은 무엇일까? 라는 것을 제한된 지면에 다 기술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특강을 통해 열정을 쏟았던 내용을 핵심적인 것으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문경에는 옛날 옛적부터 아리랑의 전신인 메나리토리 기반의 ‘문경아라리(문경새재소리)’가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흥선대원군이 중수할 당시, 이 문경 소리가 한양으로 올라가 팔도에서 모인 장정들이 부르자, 전국적으로 확산, 대유행하면서 우리가 아는 아리랑으로 변이된 것이다.
그 이후 1896년,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 박사는 당시 남녀노소 모두가 애창하던 ‘아르렁 타령(구아리랑)’을 채록하며, 그 첫머리에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라는 가사를 기록했다. 이는 아리랑 역사상 최초의 서양식 악보로서 세계에 우리 소리의 진수인 '아리랑'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1912년 조선총독부 자료집에 수록된 ‘문경풍년아리랑’,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주제가에도 이 가사가 등장한다. 1930년대 음반과 경성방송에 기록된 ‘새재소리’와 1935년 ‘문경의병아리랑’에서도 이 ‘문제적 가사’는 변함없이 불렸다. 여기서 ‘문제적 가사’란, 아리랑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라는 의미다.
결국, 근대 아리랑의 시원은 우리 문경새재아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영향받고 파생한 진도, 밀양아리랑 등 전국 20여 개 아리랑 사설 속에 ‘문경새재’와 ‘박달나무’란 노랫말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결정적인 증거는 진도아리랑의 첫 소절조차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가”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문경새재아리랑이 모든 아리랑의 모태이자 출발점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며, 귀중한 문화 자산인가! 우리가 이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 문경에 아리랑 문화가 정착되고, 전통을 유지하되 시대에 부응하여 다양하게 변신하고 잘 활용한다면, 그 무한한 가치가 K-팝 못지않은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노래 한 가락을 전승하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인이 아리랑의 근원을 찾아 문경으로 모여들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아리랑 도시 문경’이 실현되고, 아리랑이 경제가 되고, 아리랑고개 문경새재와 더불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국내외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문화 명소로의 문경이 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이제는 그 무한한 가치를 현실로 바꾸기 위한 우리의 행동이 필요한 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BTS의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이 3월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는 뉴스를 보았다. 공연 주제와 타이틀이 ‘아리랑’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세계의 축제가 되어 경제적 가치 또한 수조 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이제 아리랑이 더 주목받게 되었다. 우리도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아리랑도시 문경’이 아리랑의 힘으로 도약할 수 있고 지역 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어려운 가운데 묵묵히 누가 무어라 하든,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인내하면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 사명감과 열정을 다한 우리 아도위의 지금까지의 업적과 이후의 활동은 보람이며 희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탄식과 아쉬움이 앞선다. 문경새재아리랑이 문경의 자랑스럽고 중요한 문화 자산인데 이를 잘 인식하고 활용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 예로 문경의 정체성을 지닌 우리 아리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리랑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다시 오지 못할 절호의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어쩌자고 국제적인 무대인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폐막식 때 문경새재아리랑이 아닌 다른 아리랑을 불렀는가? 하는 것이다.
또 문경 출신의 감독이 문경시와 업무협약을 통해 제작된‘문경’이라는 영화에 문경의 수려한 풍경과 숨은 비경, 관광 명소를 촬영하여 문경의 아름다움을 홍보함까지는 좋았는데, 영화 중 출연 배우가 문경새재아리랑이 아닌 다른 지역 아리랑을 불렀다. 영화의 힘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을 알릴 좋은 기회인데 이를 놓친 안타까움에 두고두고 가슴 아팠고, 영화를 보는 중에 탄식했다. 이런 예는 우리 지역 문화의 주체 의식 부재와 문경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결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리랑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양 사유화하거나 독점하려는 옹졸한 행태는 지역 문화계의 수치다. 아리랑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특히 지역 리더들이 근래 트로트에 쏟는 관심과 지원의 단 100분의 1이라도 아리랑에 할애해 주길 간곡히 바란다. 문경의 진정한 미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문경의 역사와 문화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인지력이나 판단력이 없는 것인가? 참으로 부끄럽고 애석한 일이다.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문경인이 아닌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적 체계와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하신 (사)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님과 사무총장 기미양 님 같은 귀한 전문가들에게, 우리는 그간 격에 맞는 예우와 감사를 드리지 못한 점은 참으로 송구하다. 정작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비를 들여가며 문경을 찾아 헌신해 온 조력자들의 공로에 대해 공식적인 감사의 표시조차 하지 않은 행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타 지자체에서는 지역 발전에 기여하거나 도움이 될 저명인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활동 기반을 마련해 주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 문경은 스스로 찾아와 헌신한 이 귀한 분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올바른 가치관과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러한 현실에 실망과 의구심을 표할 것이다.
(사)아리랑연합회는 1980년부터 지역 아리랑과 함께 '문경새재아리랑'을 대내외에 알리고, 특히 2000년 초반부터 문경새재아리랑의 지속적 연구와 논문 발표, 문경새재아리랑제 기획 및 제작, 신문 방송 등을 통해 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적·이론적 체계를 정립하는 데 힘써 왔다. 문경새재아리랑 음반을 직접 기획‧제작, 문경새재아리랑축제와 사할린아리랑축제를 매개로 문경시가 사할린 동포사회와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며 동행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두 분이 평생 수집한 아리랑 관련 문헌을 국립민속박물관 '아리랑특별전'에 이어 우리 문경 옛길박물관에도 무료 임대해 주었다. 덕분에 3년간의 '아리랑특별전'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고, 어떤 대가도 없이 지난 2017년부터 2년여 동안 문경문화원에서 매주 '아리랑학교' 무료 수업을 진행하여 아리랑을 전파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했다.
또한 김연갑 이사장은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대장경’ 기록화 사업을 최초로 기획하고 추진한 인물이다. 이 기록화 사업의 초기 1년은 숭고한 집념과 헌신의 시간이었다. 사업을 기획한 김연갑 이사장과 기미양 사무총장은 문경새재아리랑의 위상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기 위해, 서울에서 활동하는 서예협회 관계자들을 직접 모셔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아리랑의 정신을 담아낼 바탕은 반드시 ‘문경 한지’여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본 사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외부의 전문성을 결합해 낸 이러한 초기 분투는, 오늘날 문경새재아리랑이 지닌 학술적·예술적 가치의 근간이 되었음을 이 지면을 빌려 명확히 기록해 둔다. 현재 문경시 공식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은 이 소중한 분투의 과정을 이 지면을 빌려 명확히 기록해 둔다.
이제라도 대동(大同)·상생(相生)·저항(抵抗)이라는 아리랑 3대 정신을 되새겨 우리 문경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 문경새재아리랑을 보급 전승하며, 아리랑을 통해 문경의 품격을 높이고, 문화적 가치를 증대시키려는 아도위 활동에 따듯한 시선을 주시고, 문경에서 찬란한 아리랑 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과 격려와 지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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