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1 21:47:52

삼국지와 인간의 삶-유비와 조운의 일화

전 경운대 겸임교수 반병목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 2272호입력 : 2026년 03월 15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AD3세기 초기 조조가 형주를 함락시킨 후, 유비가 있는 번성으로 향했을 때, 아직 변변한 세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형주의 성주였던 유종에게 의탁하고 있던 유비는 자신의 가신을 포함한 30여 명 병사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후퇴 한다. 강력한 조조군 습격을 받고 유비의 소수부대는 무참히 깨어졌고 간신히 장판이라는 곳에 다시 모였을 때, 유비는 자신의 아내와 갓난 아들이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유비와 그의 의형제(관우, 장비), 그리고 함께한 장수들이 낙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말을 타고 달려 나가는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자룡이었다. 그는 마주 달려오는 5000명의 적군과 당당히 홀로 맞서며 뚫고 나갔다. 적은 비록 5000이나 되었지만 그의 무예와 용맹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조자룡은 자신의 창이 부러지면 적군의 창을 빼앗아 그것으로 싸웠고, 그것이 또 부러지면 또 다시 적군의 것을 빼앗아 싸우며 5000의 적군을 헤쳐 나갔다.

이때부터 중국에는 어떤 사람이 현란한 재주를 과시할 때 “조자룡이 헌 창 쓰듯 한다”는 속담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창을 바꿔 싸워가며 그는 마침내 어느 우물가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유비의 부인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얼른 말에서 내려 유비의 부인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내가 부인과 아기씨를 이 엄중한 포위망에서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난리 통에 다리가 부러져 거동이 힘겨운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알고 어린 아기만을 받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조자룡은 적군의 함성이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가운데서 다시 간청했다. “저는 두 분을 모셔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군에 대한 나의 의무입니다.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그녀는 다시 말했다. “나마저 말에 오르면 말이 무게를 못 이겨 달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그러니 어서 이 아기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고는 말릴 사이도 없이 그녀는 우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조자룡의 충성심과 고집을 익히 알고 있는 그녀가 아기와 조자룡을 탈출케 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자룡은 적군이 시신에 손을 댈 것을 막기 위해 담을 무너트려 우물을 덮은 후, 아기를 갑옷 속에 조심스럽게 숨기고는 다시 말에 올랐다. 그리고는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7차례나 돌파하며 조조의 오른팔이었던 하후은과 안명을 비롯하여 무려 50여 명을 베고 탈출한다.

한편, 조자룡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언덕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조조는, 그 싸우는 모습이 너무도 황홀하여 부관에게 그가 누구냐고 물었고, 부관이 언덕을 내려가 소리쳐 묻자 조자룡은 그를 향해 당당하게 소리쳐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유비의 장수, 상산 조자룡이다!” 이에 조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런 훌륭한 장수는 비록 적이지만 죽이기에 너무 아깝다. 활을 쏘지 말고 사로잡아라. 설득하여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 그러나 조자룡은 조조의 기대와 달리 5,000명 포위를 뚫고 아들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삼국지연의는 조자룡이 무사히 유비에게로 돌아와 아기를 유비에게 건네자, 아기는 그때까지도 조용히 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이는 조자룡이 그만큼 동요 없이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무예가 뛰어났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들 아두를 받아든 유비는 아들을 바닥에 내던져 버리면서,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내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고 한다. 이 때 조자룡은 황망히 허리를 굽혀 팽개쳐져 우는 유비의 아들 아두를 안아들고 눈물 흘리며 절한다. “자룡은 이제 간뇌도지(간과 뇌가 땅에 으깨어짐)하더라도 주공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국지에는 여러 리더들이 나온다. 조조는 능력을 제일 중요시 한다. 손권은 지연과 혈연을 잘 이용한 리더, 사마의는 제도 개혁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한 케이스고, 유비는 의리와 인정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위화감 없이 어울릴 수 있으며 사람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주변 사람의 강점을 오롯이 활용할 수 있는 리더.

유비는 바로 그런 리더였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경영이 필요한 곳이다. 회사, 단체, 친목 모임, 누구나 다 속해있는 가정까지, 그곳에서 과연 유비같이 사람과 의리를 중시하고 강점을 인정하고, 또 사람의 호의를 얻을 수 있는 기본 자질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또한, 조운 같이 한번 맺은 인연을 중시하고 끝까지 의리를 지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촉한의 정국이 안정된 이후에도 조운은 조용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했다. 북벌이 시작되던 시기, 그는 등지와 함께 기곡 전투에 투입되어 후방의 군량 수송과 병력 재정비, 퇴로 확보 등 보조 작전을 지휘했다. 이미 고령이었음에도, 군율을 어기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품격 있는 태도로 병사의 존경을 받다가 229년, 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유선은 그에게 ‘순평후(順平侯)’라는 시호를 내려 공적과 인품을 기렸다. 조운은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유비 휘하 최고 무장 5인방.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중 유일하게 전장에서 요절하거나 음모에 휘말리지 않고 자연사한 인물로, 끝까지 주군의 곁을 지키며 일생을 마무리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조운의 삶은 곧 신념이었고, 그 신념은 생전에 칼보다 더 묵직한 신뢰를 낳았다. 그는 무장으로서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도 완성형에 가까운 인물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조자룡 같은 사람”을 이상향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조운은 누군가처럼 결의를 외치지도 않았고, 영웅담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정갈했고, 맡은 바는 끝까지 완수되었다. 그는 위로는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고, 아래로는 병사들에게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전공을 과시하지 않았으며, 인간관계조차 절제하며 행동으로만 신뢰를 쌓았다.

오늘날 우리는 유능함보다 화려함을, 일관성보다 속도와 변화에 더 높은 가치를 둘 때가 많다. 빠르게 이름을 알리고, 더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시대 속에서, 조운 같은 인물은 어쩌면 너무 조용하고 무색무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야말로 진짜 무게였고, 그 무색무취함이야말로 아무에게나 낼 수 없는 향기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일전에 한 국회의원이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임해, 국회의원들을 향해 “나와의 개인적 의리는 생각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발언하면서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정과 의리의 퇴장”, “현실적 선택과 합리적 계산” 즉 자기 이익위주로 살아가는 방식이 대세다. 사실 의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신뢰의 끈이다. 그 영향은 공동체 전체에 퍼지고, 인간 관계를 지키고 신뢰라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주는 기초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남는 것이 좋을까? 인정과 의리,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으로 남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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