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5-14 17:31:53

'장기유배지' 전하 신은 억울합니다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김경태 기자 / 2312호입력 : 2026년 05월 14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경북 포항 남구 장기면에는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있다. 조선시대 유배문화를 재현한 유배문화유적지다. 동해를 바라보는 장기읍성 인근에 조성된 이 체험촌은 조선시대 정치와 사상의 비극이 응축된 유배 역사를 문화관광 자원으로 되살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2010년대 초반 포항시가 지역 역사문화 복원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였으며, 유배인들의 초가와 생활공간, 형틀 체험장, 민속생활관 등을 갖추어 교육과 관광을 겸하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학생과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면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고난 속 인간 정신의 기록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당파 싸움과 왕권 갈등 속에서 수많은 선비와 정치인이 귀양길에 올랐다. 이곳에 유배된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다. 송시열은 서인 세력의 영수로 예송논쟁과 왕권 문제에 깊이 관여하였다가 숙종 때 정치적 갈등 끝에 함경도 덕원과 경상도 거제 등에 유배됐으며 장기에서는 4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을 멈추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단속하며 경전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주자대전차이와 이정서분류 등 많은 문집을 남겼다. 

송시열을 찾아 오는 선비들은 이 곳이 조선 후기의 정치 1번지라고 했으며 이 곳에서 수학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죽림서원을 세웠다. 우암 송시열은 결국에 제주도 유배에서 압송 도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정약용은 천주교 연루 사건과 남인 탄압 속에서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 등에 유배되었다. 신유박해 후 장기에서 7개월 정도 유배 생활하다가 복귀했다가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에 유배되어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다산이 장기유배지에 있었던 기간은 정치적인 선비를 만나는 일은 피하면서 학문 탐구와 주민의 삶을 돕는 연구를 했다. 기해방예변, 삼창고훈, 이아술, 촌병혹치 등 문집와 장기농가, 기성잡시 등 시문을 이곳에서 남겼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배신자에 대한 분노는 버리고 미쳐 깨닫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참회했다.

유배는 정치적으로는 좌절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오히려 위대한 결실의 시간이 되었다. 다산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백성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현실 개혁의 사상을 완성하였다. 왕권시대의 유배는 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위대한 사상가로 만들기도 했다. 이곳 장기 유배지에는 조선시대 211명의 유배인이 머문 것으로 전해진다. 왕권 다툼에 휘말린 대신, 붕당정치의 희생자, 천주교 박해 관련 인물 등 그 사연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억울함 속에서 병들어 죽었고, 어떤 이는 석방되어 중앙 정치에 복귀하였다. 또 어떤 이는 유배지 주민과 교류하며 지역 문화 발전에 영향을 남겼다.

특히 학자형 유배인들은 서당을 열고 백성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의술과 농업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반면 권세를 잃은 일부 유배인은 극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 생을 마쳤다. 조선의 유배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왕권시대의 파란만장한 인간 운명의 부침을 보여주는 거대한 역사 드라마였다. 체험촌을 둘러보며 크게 느껴지는 것은 권력은 덧없지만 기록과 정신은 남는다는 점이다. 초라한 귀양집과 차가운 형틀은 인간의 고통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 탄생한 학문과 사상은 오히려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유배문화는 단순한 정치 탄압의 역사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학문과 인간 존엄을 지키려 했던 빛나는 선비정신의 기록인 셈이다. 앞으로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은 단순 체험시설을 넘어 전국적인 역사문화 교육 공간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체험촌은 너무도 좁고 유배지 유물이 빈약하다.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해서 유배지 역사 문화 체험 공원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첫째, 유배 인물들의 생애와 저술을 디지털 콘텐츠와 AI 영상으로 재현해 청소년 교육 효과를 높여야 한다. 둘째, 장기읍성과 연계한 역사 탐방 코스를 구축해 체류형 관광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전국 유배문화 유적과 연계한 학술대회와 문화축제를 정례화해 역사관광 브랜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자료 발굴과 번역 사업을 확대하여 잊힌 유배인들의 삶을 복원해야 한다.

유배는 본래 인간을 고립시키는 형벌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오늘, 그 유배의 흔적은 오히려 우리에게 역사와 인간성의 깊이를 가르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은 권력의 흥망과 인간 정신의 불멸을 동시에 증언하는 살아 있는 역사 교실이라 할 만하다. 방문객을 안내하는 역사문화해설사에게 제안을 했다. 고향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향교와 망향정을 임금이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망양교와 망양정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가. 유배인이 모두 한양을 바라보며 '전하 신은 억울하옵니다'며 울부짖었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이 발령을 받으면 이곳에 와서 형벌 체험도 하며 청렴결백 서약식을 하고 분당정쟁,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매년 거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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