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우실 시간 없습니다. 아이 휴대전화부터 가져오세요” 서초동에서 학교폭력 사건을 주로 맡는 한 변호사는 학폭 상담실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 당했다며 울면서 찾아온 학부모에게 최우선으로 시키는 일은 반성문 작성도 피해 학생에 대한 사과도 아니다. 아이의 카카오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록을 뒤지는 일이다. “상대방이 우리 아이를 학폭으로 신고했다면 우리도 상대방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예전에 욕설을 한 적은 없는지, 단체 대화방에서 험한 말을 한 적은 없는지, 장난으로 신체 접촉을 한 적은 없는지 전부 확인합니다”
학교폭력 분쟁은 교육적 해결 영역을 벗어나 거대한 법률 시장이 됐다. 교육계에서는 이를 두고 생활기록부를 둘러싼 학부모와 변호사들의 모습을 보며 이른바 학폭 비즈니스가 팽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폭 기록이 있는 지원자의 불합격 사례가 속출하면서 학부모 공포심은 더 커졌다.
대치동에 거주하며 고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며 학폭 관련 소송을 겪은 한 학부모는 “1000만 원, 20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학폭 기록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는 비전문적인 학폭위 시스템 안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 방어권 행사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소년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언론에서는 변호사들이 가해 학생 면피를 위해 맞신고를 부추기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현실에는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폭위 처분에 한계를 느끼고 법정으로 끌고 감으로써 징계 수위가 조절되는 경우도 있다. 학폭위 판단에 불복하는 학부모들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으로 향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가해 학생 측이 제기한 학교폭력 조치 취소 소송 148건 가운데 24건은 일부 인용돼 처분이 취소되거나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교육계에서는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제도가 학생 보호와 선도 보다는 점차 법률 분쟁의 장이 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생과 학부모는 담임교사나 상담실보다 먼저 변호사를 찾고 사과와 화해보다 증거 수집과 소송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실 안 갈등이 서초동 법률 시장으로 옮겨간 사이, 정작 학생의 관계 회복이라는 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참교육, 이 드라마의 세계관은 선을 넘는 학생, 교사, 학부모로 인해 무너진 대한민국 교권과 교육 현장을 지키기 위해 설립된 가상의 기관 ‘교권 보호국’이 전제된다. 교권 보호국 감독관들은 체벌까지 동원해 가며 학교에서 학교폭력, 도박, 마약 중독 등의 문제를 해결한다. 교권 붕괴와 학생 인권 우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에 대해 교원 단체들까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 파장도 커지기도 하지만, 무너진 교육 시스템 내에서 억압받거나 위협받는 약자를 구제하는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대부분 학부모 혹은 학생 시기를 겪은 교육 수요자들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크게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대본이 탄탄하고 오락성이 뛰어나 시청자들을 깊이 몰입하게 하며, 다음 전개를 궁금하게 한다”며 “올해 현재까지 나온 작품 중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박주형 경인 교대 교수는 “교실 내 스마트폰 사용, 학교폭력 등으로 대표되는 드라마 속 공교육 붕괴의 문제는 이미 글로벌 이슈”라며 “학생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권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참교육의 모습에 글로벌 팬들도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2023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이후 교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다”며 “과거에는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촌지를 받는 교사가 드라마, 영화 소재가 됐지만 이젠 학생 인권 우선 주의가 커지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콘텐트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드라마들은 입시 경쟁의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결국은 우정과 노력, 청춘의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 2019년 방영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부터다. 이 작품은 강남 상류층 입시 경쟁과 사교육 시장을 낱낱이 해부하며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후 교육 콘텐트들은 점점 극단적인 사회 고발물로 변모했다.
2022년의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개인 인생 전체를 파괴하는 폭력으로 묘사하며 피해자가 수십 년에 걸쳐 사적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을 그렸다. 같은 해 나온 ‘소년 심판’은 날로 심각해진 촉법 소년의 문제를 다뤘다. ‘스카이 캐슬’등은 올바르게 해결되지 않았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드라마에 등장해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한국형 슈퍼 영웅들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쾌감을 준다.
사실 드라마 속 문제 해결 방식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참교육에 나온 사례들이 자신의 경험과 닮아있다는 점을 토로하고 있다. 한국교총, 교사 노조 등은 교권 보호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까지 냈다. 드라마 속에서는 교권을 침해한 학생이 철저히 처벌받지만, 현실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조차 할 수 없다며 “교권 보호를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나서는 극 중 교육부 장관 모습을 현실 장관, 교육감들이 닮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제 해결 방식이 지나치게 단편적, 폭력적이라는 지적이다. ‘스카이 캐슬’은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됐고, ‘더 글로리’는 사적 복수가 정의 구현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참교육’역시 체벌과 강압적 응징 장면을 전면에 내세운다.
정신의학에는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직업적 판단이 긴밀하게 맞물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판단이 부정당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입는 심리적 손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교사는 단순히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직업이 아니다. 학생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문제가 되는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 놓을지, 아이들 간 갈등을 어떻게 중재할지를 매 순간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그 판단 하나하나에 자신의 교육관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믿어 온 교육적 판단이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되고, 그 공격으로부터 학교와 사회가 충분히 보호해 주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당사자는 외부의 부당함에 분노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내 판단이 틀렸던 게 아닐까. 본래 외부를 향해야 할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하는 그 지점이 우울증의 시작이자 자존감이 낮아지고 직업적 보람이 줄어드는 원인이 된다. 교사들이 더 이상 도덕적 손상을 당하지 않는 교육 환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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