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됐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된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도 우리는 자신을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 청년기의 나, 지금의 나를 하나의 인생으로 받아들인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주관적인 감각을 자기 연속성(self-continuity)라고 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기연속성을 과거와 현재의 연결, 현재와 미래의 연결, 그리고 과거·현재·미래 전체의 연결이라는 세 측면으로 설명한다.
자기연속성의 뿌리는 현대 심리학보다 훨씬 오래됐다. 영국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의 개인적 동일성을 의식과 기억의 연속성이라는 문제와 연결해 생각했다.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자기연속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철학적 배경이 됐다. 이 문제는 현대 심리학에서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됐다. 파이오 사니(Fabio Sani)가 편집한 (2008)는 자기연속성에 관한 여러 연구를 하나로 모은 중요한 저서다. 오늘날 자기연속성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적 연구로 콘스탄틴 세데키데스, 에밀리 홍, 팀 와일드슈트의 2023년 가 있다. 이 연구는 자기연속성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동기와 행동, 심리적 건강 등과 관련된다고 정리했다.
자기연속성이 강한 사람은 과거를 단순한 지나간 일로 보지 않는다. 성공도 실패도 자신의 인생이라는 큰 이야기 속에 넣는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자기연속성이 약하면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다. 그런 나는 이제 나와 상관없다며 과거를 끊어버릴 수 있다. 반면 자기연속성이 강한 사람은 그때는 잘못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실패한 과거를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이면 오늘의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된다. 자기연속성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얼마나 가깝게 느끼느냐이다. 오늘의 내가 10년 뒤의 나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생각한다면 당장의 쾌락이나 편의를 위해 미래를 희생하기 쉽다. 반대로 10년 뒤의 나도 바로 지금의 나라고 느끼면 오늘의 행동이 달라진다. 오늘의 작은 절제가 미래의 건강을, 오늘의 공부가 미래의 지식을, 오늘의 선행이 미래의 인간관계를 만든다고 믿는다. 결국 미래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현재의 자신을 함부로 살지 않는다.
자기연속성이 강하다는 것은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고집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연속성은 변화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이다. 나무는 해마다 잎이 떨어지고 새 잎이 난다. 모습은 달라지지만 같은 나무다. 사람도 생각이 바뀌고 직업도 바뀌며 사회적 지위도 변한다. 늙어 몸도 변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정직, 책임, 배려, 배움, 봉사와 자신의 핵심가치를 이어간다면 삶에는 연속성이 생긴다. 따라서 자기연속성은 변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변하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삶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연속성을 높일 수 있을까.
첫째, 과거의 나를 용서해야 한다. 잘못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둘째, 현재의 나에게 충실해야 한다. 작은 약속을 지키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셋째,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와 연결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10년 뒤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게 하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넷째, 삶의 중심가치를 세워야 한다. 상황은 변해도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는 쉽게 변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무엇을 배웠으며 내일의 나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삶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인생으로 묶어준다. 인간의 삶은 결국 수많은 ‘오늘’의 연결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충실히 하며 미래의 나에게 책임지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의미있는 서사로 만들어 간다. 나는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과거의 의미를 완성하고 미래의 나를 만든다. 그러므로 좋은 삶이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서 지혜를 얻고,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래에 더 나은 나를 물려주는 삶이다. 그것이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이 자신을 완성해가는 길이다.
버킷리스트 1번으로 먼저 나는 과거의 나와 관계 정립을 해야 한다. 자랑 스러운 과거도 있겠지만 부끄럽고 후회 막심한 지난 세월도 있었다. 그러나 그속에 나의 중심가치를 찾는 것이다. 나무로 치면 잎이나 꽃이 아닌 땅에 떨어져도 싻이 나오는 씨가 있는 열매를 발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래의 나와 관계 확정을 할 일이다. 문제는 지금 여기 숨쉬며 실존하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서 영원히 반짝이는 핵심가치를 찾아 내어 살 수 있느냐이다. 그런 것이 나에게 없다면 나는 헛껍데기요. 진짜 풀잎의 이슬이요, 물거품이요, 떠도는 구름일 뿐이다. 수행자들이 깨달았다며 무릅을 치지만 무엇을 깨달은 것일가. 다비식 후에 남긴 사리가 아닌 실존하는 내 안에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불변의 가치가 확립되어야 한다. 나를 그 빛나는 가치에 매달고 나면 죽어도 살아도 좋고, 있어도, 없어도 좋을 뿐인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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