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과 글을 접한다. 신문의기사, 정치인 연설, 교수 강의, 성직자 설교, 학자의 논문,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 많은 글들이다. 그러나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깊이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왜 같은 글을 읽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텍스트(Text)만 읽고 컨텍스트(Context)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라면 컨텍스트는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 말했는가’다. 텍스트에는 문장과 단어가 있고, 컨텍스트에는 시대와 역사, 사회와 문화, 사람과 상황이 있다. 따라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말 자체와 말이 나온 배경을 함께 읽어야 한다. 텍스트는 정(正), 컨텍스트는 반(反), 이를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문제가 생긴다.
하나의 텍스트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 텍스트를 둘러싼 컨텍스트를 살펴보면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고 하자. 문장 자체만 보면 충성심과 헌신의 표현이다. 이것이 텍스트다. 그러나 그 말을 선거 직전에 했는지,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했는지, 취임식에서 했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말한 뒤 실제 행동이 어떠했는지도 중요하다. 이것이 컨텍스트다.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텍스트 없는 컨텍스트는 근거를 잃고, 컨텍스트 없는 텍스트는 의미를 잃기 쉽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19세기 초 해석학을 특정 종교 문헌의 해석 방법을 넘어 인간의 언어와 담화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킨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텍스트를 이해할 때 언어와 문법을 분석하는 문법적 해석과 저자의 정신과 의도를 이해하려는 심리적 해석을 함께 중시했다. 즉,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인간까지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후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는 인간의 정신적·문화적 산물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문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한 시대의 사상과 작품은 그 시대의 역사와 사회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정반합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이다. 흔히 변증법을 설명하면서 정(正)·반(反)·합(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이것을 헤겔이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정반합’이라는 세 단계 공식으로 제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요소의 긴장과 대립을 거쳐 새로운 이해에 이른다는 설명은 일반적으로 변증법을 이해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도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텍스트가 하나의 의미를 제시하면, 컨텍스트가 그 의미에 질문을 던지고, 둘을 함께 검토하면서 보다 깊은 의미가 형성된다. 따라서 최종적인 ‘합’은 단순히 둘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모두 버리지 않고 둘의 관계 속에서 더 정확하고 풍부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설교에서 특히 중요하다. 성경의 한 구절을 읽고 그 문장만으로 오늘의 상황을 설명한다면 자칫 본문의 본래 의미를 왜곡할 수 있다.
먼저 물어야 한다.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다음에는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마지막에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설교는 본문(Text)→맥락(Context)→의미(Meaning)→적용(Application)이라는 해석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삶과 연결하는 작업이다. 좋은 설교는 본문의 본래 의미를 살리면서 그것이 오늘의 삶에 어떤 울림을 갖는지를 밝혀주는 것이다. 강의도 지식과 시대를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을 가르치면서 증기기관, 공장, 기계의 발명만 설명한다면 학생들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인구 증가와 도시화, 자본주의의 성장, 노동환경의 변화까지 함께 설명하면 산업혁명이 왜 일어났고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지식이 텍스트라면 시대적 배경은 컨텍스트다. 따라서 좋은 강의는 "무엇인가→왜 생겼는가→당시에는 무엇을 의미했는가→오늘날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까지 나아간다. 그때 지식은 암기해야 할 정보에서 삶을 이해하는 지혜로 바뀐다.
논문도 자료와 맥락을 함께 검증해야 한다. 논문에서는 특히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어떤 지역의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고 하자. 그 숫자 자체가 텍스트라면, 조사 시점과 조사방법, 지역의 인구구조, 과거의 수치, 다른 지역과의 비교 등은 컨텍스트다. 숫자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숫자의 의미는 맥락 속에서 결정된다.
역사 논문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과거의 인물을 평가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제도와 문화, 당시의 사회적 조건을 살펴야 한다. 논평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문장 하나다. 오늘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문맥에서 잘려 나온 한 문장이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사람의 긴 발언 가운데 한 문장만 잘라 빠르게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문장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위험하다. 좋은 논평가는 먼저 원문을 확인한다. 그 다음 앞뒤 문맥을 살핀다. 그리고 발언이 나온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했는지를 살펴 평가한다. 즉 사실 확인→문맥 확인→의미 분석→평가의 순서가 필요하다. 판단이 사실 확인보다 앞서면 논평은 쉽게 선입견으로 변한다. 독자의 컨텍스트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모두 살펴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독자 자신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 가치관이라는 ‘나의 컨텍스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젊은 사람과 노년층의 느낌이 다르고, 같은 역사적 사건을 보아도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Text-무엇이라고 말했는가? Context-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말했는가? My Context-나는 어떤 경험과 관점에서 그것을 읽고 있는가?
자신의 컨텍스트까지 성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선입견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결국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는 단순한 ‘본문 대 배경’의 관계가 아니다. 텍스트는 컨텍스트 속에서 읽힐 때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고, 컨텍스트는 텍스트를 통해 비로소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텍스트가 컨텍스트를 만나고, 컨텍스트가 텍스트를 다시 비추면서,우리는 처음보다 더 깊은 의미에 도달한다. 그것이 해석의 힘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본문만 보아서는 안 되고, 강의자는 지식만 전달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는 자료의 숫자만 제시해서도 안 되며, 논평가는 한 문장만으로 사람과 사건을 재단해서도 안 된다. 본문을 읽되 시대를 읽고, 사실을 보되 배경을 보고, 말을 듣되 말한 사람의 상황까지 살펴야 한다. 정(正)과 반(反)의 긴장을 피하지 않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긴장 속에서 더 넓고 깊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정과 반을 넘어 합에 이른다. 상황의 강을 건너 진리의 언덕에 도달한다. 단순한 글 읽기의 기술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텍스트만 읽는 사람은 말에 머문다. 컨텍스트까지 읽는 사람은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은 말 너머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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