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공해인가. 빌런은 사회악인가, 아니면 정의를 위해 악의 가면을 쓴 영웅인가. 우리는 악당을 보고 빌런이라고 부른다. 영화에서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당이 빌런이고, 일상에서는 공공질서를 어지럽히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자가 빌런이다. 그런데 한때 악당을 뜻하던 이 단어가 이제는 유별난 사람, 자기 분야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 심지어 통념을 거부하는 매력적인 인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빌런의 의미가 넓어지면서 악당과 영웅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빌런은 정말 악인일까. 혹시 우리가 악당이라고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잘못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안티 영웅도 있는 것은 아닐까.
빌런(villain)의 어원은 라틴어 빌라누스(villanus)다. 농장이나 전원 저택을 뜻하는 빌라(villa)에서 일하던 농장 노동자, 농민을 가리켰다. 이 말은 고대 프랑스어 빌랭(vilain)을 거쳐 영어의 빌런으로 이어졌다. 중세 유럽의 봉건사회에서 농민과 평민을 가리키던 말이 신분적 편견과 결합하면서 천박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얻었다. 이후 16세기 무렵에는 악행을 저지르는 악당이라는 뜻으로, 19세기에는 소설과 연극의 악역을 가리키는 의미로 자리 잡았다. 언어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배층의 시선에서 낮은 신분의 사람은 무례하고 천박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한 사회가 특정 계층에 씌운 부정적 이미지가 언어로 굳어진 것이다.
영화 속 빌런은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권력을 탐하고, 복수에 사로잡히며,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유형에는 스타워즈의 팰퍼틴 황제 같은 권력형 빌런,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같은 광기형 빌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고블린과 같은 복수형 빌런,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의 타노스같은 신념형 빌런, 조커의 마지막 같은 비극형 빌런 등이 있다. 이 유형들은 서로 겹칠 수 있다.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것이 아니라 상처와 좌절, 사회적 배제 속에서 악의 길로 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빌런의 행동을 낳은 욕망과 신념, 사회적 환경을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영화보다 현실적인 빌런이 많다. 거대한 음모를 꾸미지는 않지만,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업무를 떠넘기고 공을 가로채거나, 지위를 이용해 동료에게 부담을 주는 회사 빌런, 권한을 남용하고 모욕적인 언행으로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상사빌런, 회의 시간을 독점하거나 논점을 흐리고 다른 사람의 발언을 가로막는 회의빌런, 그 외에도 여행빌런, 주차빌런, 헬스장 빌런, 소비빌런, 댓글빌런, 등 가정과 직장, 대중교통과 관광지, 온 라인 공간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영웅과 빌런은 흔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의를 주장하는 쪽이 언제나 정의롭고,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쪽이 언제나 악한 것은 아니다. 부당한 관행에 저항하고, 부패를 폭로하는 사람은 내부 질서를 흔드는 문제 인물로 취급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조건 영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안티 히어로(antihero)는 전통적인 영웅처럼 도덕적으로 완전하거나 모범적인 인물이 아니다. 결함과 모순을 지니고 때로는 거칠고 비정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기존 영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내거나 부조리한 현실에 도전하기도 한다. 안티 히어로는 영웅의 역할을 하면서도 전통적인 영웅상에서 벗어난 인물을 뜻한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은 황해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도적집단의 우두머리로,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활동과 진압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후대에는 부패한 관리와 탐욕스러운 양반에 맞선 인물로 의적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그를 둘러싼 평가는 국가의 법질서를 어긴 도적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당시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민중 저항의 상징이라는 후대의 해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임꺽정에 대해 권력이 붙인 이름과 민중이 기억하는 이름이 다르다. 당대의 법질서가 도적으로 본 그를 후대의 대중문화가 의적으로 기억하게 했다.
조선의 문인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항민은 윗사람의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며, 원민은 부당한 현실에 원망을 품고도 행동하지 못하며. 호민은 현실의 모순을 깨닫고 변화를 일으킨다고 했다. 호민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지만, 부당한 지배와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하면 행동에 나서고 다른 백성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억눌린 사람들의 분노는 사라지 않고 쌓이며, 어떤 순간에는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빌런의 시대 천의 얼굴로 신출귀몰하는 악당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악당은 반드시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와 질서, 공익이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거칠고 불편한 말과 행동으로 반사회 비인간의 모습으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지닌 빌런도 있다.
빌런의 어원은 농민에서 시작해 악당으로 변했으며 오늘 그 의미는 다시 넓어져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권력이 악이라고 부른 것을 아무런 검증 없이 악으로 믿어도 안 된다. 영웅은 언제나 영웅의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모두가 침묵할 때 혼자 소리치는 사람, 잘못된 관행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빌런은 어쩔 수 없는 사회악인가, 빌런들 속에 가면 쓴 영웅이 있는가. 그가 무엇을 위해 싸우며, 누구를 해치고, 어떤 세상을 만들려 하는가를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법과 제도가 탐욕과 부패를 처리 못하고 법으로 악을 청산하지 못하는 현실은 참혹하다. 그래서 가해자는 법망을 넘어가고 피해자의 눈물이 계속되는 세상을 뒤집어 엎을 영웅을 기다린다.
비록 악당의 가면을 쓰고라도 악을 응징할 영웅이 나오길 고대한다. 기존 영웅과 다른, 기득권과 타협없이, 권력 눈치 보지않고, 아무도 못 건드리는 무서운 악의 탈을 쓴 착한 영웅이 나와야 한다. 그 영웅은 악을 응징하되 자신이 새로운 악이 되지않으며, 악한 권력을 붕괴시키고 그 자리에 자신의 탐욕을 세우지 않는 의로운 안티 히어로다. 빌런시대 깡패와 걸인같은 모습으로 위장한 이시대의 임꺽정과 홍길동, 이몽룡이 여의도나 공화문, 용산역이나 남대문시장, 지리산속이나 낙동강가에 있을지 모른다. 빌런의 시대에 빌런과 히어로를 분별해야 한다. 빌런과 히어로를 볼수 있는 눈이 자신의 아집과 오만에 흐려졌는지 시력점검도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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