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1 23:07:27

여성해방과 민족해방 동시 투쟁한 투사, 박차정 의사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06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가를 물어보면 보통 사람들은 유관순 열사를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식민지하에서의 여성들의 투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차정 의사 또한 마찬가지다.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식민지하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하였지만 해방 이후에는 월북하여 58년 숙청이 될 때까지 고위층을 지낸 의열단 단장 약산 금원봉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차정 의사 본인 역시 일제하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해 왔기에 민족주의계열의 운동에만 정통성을 부여해 온 우리 현실 속에서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당시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민족의 해방을 위해, 그리고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운동의 다양한 부문에서 투쟁하였지만, 여성들의 활동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많았다. 특히 국외의 항일투쟁에서 여성들의 몫이 컸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는 왔어도 구체적 연구 결과물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차정 의사의 경우에도 여성이기에 그에 대한 평가가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늘은 이 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는 1910년 경상남도 동래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박차정 의사의 아버지는 동래의 신식학교인 개양학교와 서울 보성전문학교를 나와 일찍이 개화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되자 한 장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고 말았다.
박차정 의사 어머니의 친정가족들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으며, 박차정 의사 어머니의 사촌은 김두봉으로 한글학자이자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다.
때문에 박차정 의사의 형제들은 훌륭한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오빠 박문희는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박차정 자신 또한 독립에 한 몸을 바쳤다.
어머니는 홀로 자녀들을 키웠으며 자녀들의 교육에도 힘을 썼다.
박차정 의사는 동래 일신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였다. 일신여학교는 박차정이 입학하기 전 부산지역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에 유서가 깊은 학교였다.
박차정 의사는 이렇게 안팎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대한 마음과 항일운동 열망을 키우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박차정 의사가 일신여학교 재학 무렵인 17세 때 순종황제의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순종황제의 장례식 날짜에 맞춰 전국의 학교에서 동맹휴학이 일어났는데 일신여학교의 주도자는 박차정이었다. 그는 6·10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노파의 차림으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돌아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박차정 의사는 일신학교의 주도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박차정 의사는 근우회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범위를 전국으로 넓히게 된다. 근우회 동래지부에 속했던 박차정 의사는 1929년 7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9년 12월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박차정 의사는 서울지역 학생들과 만세시위행진을 진행했다. 주도자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박차정 의사는 풀려난 후에도 2차 시위운동을 벌였고, 또다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구속되었다. 극심한 고문과 옥고를 치른 박차정 의사는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1930년 오빠의 권유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활동을 이어갔다.
북경에서 박차정 의사는 당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주력하고 있었던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에 합류하여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 중앙부의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31년 3월 김원봉 선생과 결혼하였다. 박차정 의사는 1936년 7월에 지청천 장군의 부인 이성실과 함께 민혁당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하고 22명으로 구성된 부녀복무단의 단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39년 2월 의사는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 참가하여 부상을 당하였다가, 김원봉 선생이 임정의 군무부장에 취임했던 즈음인 44년 5월 27일에 부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였다.
35세의 나이로 어려서부터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위해 항일투쟁에 혼신을 다했던 박차정 의사는 해방을 1년 앞두고 꿈에도 그리던 민족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그만 눈을 감았다. 해방 후 귀국한 김원봉 선생은 박차정 의사의 유골을 가져와 자신의 고향인 경남 밀양 감전동 뒷산에 안장하였다.
박차정 의사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신라대학교 이송희 교수의 노력 덕분이라고 하니 뒤늦게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치신 분들을 위해 오늘도 기도드린다.

▲ 김 지 욱 /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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