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1 21:29:39

하와이 사진 신부에서 독립운동가로, 이희경 여사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13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개항 이래 신문물 유입은 가치관 변화를 수반했다. 이러한 가운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머나먼 이국땅인 하와이로 본격적인 노동이민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1902년 12월, 공식적인 ‘디아스포라(Diaspora)’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고달픈 삶 속에서도 미풍양속인 상부상조 정신을 발휘하였다. 또한 한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점차 생활이 정착되면서 한인사회는 청년 결혼 문제에 직면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사진결혼’이었다. 사진결혼은 한국에 있는 처녀들에게 사진을 보내어 선을 보고 혼인을 결정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1910년부터 미국 내 이민이 금지된 1924년까지 최대 1천여 명의 여성들이 사진신부가 되어 낯선 땅으로 결혼 이민을 떠났는데 이희경 여사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이희경 여사는 대구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이금례였다. 이 여사는 1894년에 대구 계산동에서 2남 2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대구 신명여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서 당시에는 신여성이었지만, 졸업 직후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가 1912년 10월 경북 영양 출신의 이민노동자 권도인과 결혼했다. 당시 신부는 18세, 남편은 24세.
미국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가난한 신혼살림에 공부는 꿈도 꿀 수 없어 남편을 적극적으로 내조하며, 다른 한인 여성들과 함께 대한부인구제회를 결성하는 등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다행이 미주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후원자인 남편 권도인은 사업수완이 뛰어나 가구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가장 빛을 발휘한 상품은 대나무 발 커튼이었다. 옆으로 펼치는 대나무 발에 아름다운 그림까지 가미된 것으로 더운 하와이의 날씨에 안성맞춤이었고, 호응도 좋아 샌프란시스코에 공장을 세울 정도로 잘 팔렸다.
그렇게 모은 돈을 평생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놨다고 하는데, 1935년 이후 해방 때까지 신문 『국민보』에 기록된 것만도 1만 달러에 가까웠다고 한다. 또한 권도인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직접 민병대로 나서 자신의 트럭으로 물자를 수송했다. 더불어 두 아들도 입대시켰다. 그의 투철한 항일의식을 보여주는 생생한 대목이다.
이희경 여사도 독립운동에 직접 나섰다. 1919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창립된 하와이 부인단체의 통일기관인 대한부인구제회의 회원 활동을 하며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전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집, 제공하였으며, 애국지사 가족들에게 구제금을 송금하는 등 구제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1928년 영남 출신 이극로가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던 길에 하와이에 체류하여 국어강연을 할 당시, 이승만이 이극로를 폄하면서 영남지역 멸시 발언을 하자, 이희경 여사는 경상도 출신 부인들과 함께 대한부인구제회를 탈퇴해 버렸다. 그리고 호놀룰루에서 김보배·박금우·곽명순·박정순·이양순 등과 함께 영남부인회(후에 영남부인실업동맹회)를 새로 결성하고 회장을 맡아 15년간 한인 부인 사회의 발전과 독립운동 후원, 재미 한인 사회의 구제사업 등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1930년 후반부터 독립금과 각종 의연금,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1940년대 초반에는 부인구제회 호놀룰루 지방회 대표로서 부인구제회 승전후원금 모집위원, 부인구제회 사료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의 회원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총 수백여 원의 독립운동자금을 기부하였다.
30년 이상이나 고국의 광복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희생을 했지만 이희경, 권도인 부부의 말로는 순탄치 못했다. 해방이 되자 이들 부부는 몇 차례 고국방문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와이에서 있었던 반 이승만 노선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1947년 이희경 여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고, 3년 뒤 권도인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고생하다, 1962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한 장으로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지에서 평생을 바쳐 독립운동을 위해 싸웠건만 고향땅 한 번 밝아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2002년 정부는 뒤늦게나마 이희경 부부의 독립을 향한 열정을 잊지 않고 두 사람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을 수여했고. 2004년 4월에는 그토록 염원하던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너무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김 지 욱 /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사람들
김천 감문 새마을남녀협의회가 21일 새마을 회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봄꽃 심기 행 
울진 북면이 지난 19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이미용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후포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지난 19일, KB증권과 (사)열린의사회가 주관한 ‘행복뚝딱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는 21일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소재 방울토마토 농가를 방문해 ‘행 
경주 동천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2026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든든하우스 지원 
대학/교육
대구동부교육지원청, 신규 및 저연차 공무원 역량강화 연수  
청도영재교육원, ‘2026학년도 영재교육원 개강식’  
대구한의대, 영덕 실버복지관과 '글로컬 3.0 대학'지역혁신 선도  
영진전문대-경북휴먼테크고, 일학습병행 협약 체결  
대구 교육청, 성인문해학습자 '실생활 맞춤형 디지털 문해교육'  
대구보건대, 국제·국내 초음파 자격시험 13건 취득  
대구보건대, 국제협력 선도대학 육성 지원사업 단계평가 연속 ‘A등급’  
청도 풍각초, '1학기 현장체험학습’ 활동  
대구서부교육청, 신규공무원 현장 밀착형 멘토링 및 인사상담  
국립경국대·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고령친화대학 논의 본격화  
칼럼
현대 여성의 삶은 치열하다. 직장 업무와 가사, 육아를 병행하다 보면 자신의 건강 
이 책이 따뜻한 이유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삶을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중동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역사, 종교, 자원, 강대국 이해관계가 중 
2026년 5월 1일은 노동절로 바뀌어 근로기준법의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 공무원 
복차지계(覆車之戒)는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모습을 보고 뒤의 수레가 미리 경계한다 
대학/교육
대구동부교육지원청, 신규 및 저연차 공무원 역량강화 연수  
청도영재교육원, ‘2026학년도 영재교육원 개강식’  
대구한의대, 영덕 실버복지관과 '글로컬 3.0 대학'지역혁신 선도  
영진전문대-경북휴먼테크고, 일학습병행 협약 체결  
대구 교육청, 성인문해학습자 '실생활 맞춤형 디지털 문해교육'  
대구보건대, 국제·국내 초음파 자격시험 13건 취득  
대구보건대, 국제협력 선도대학 육성 지원사업 단계평가 연속 ‘A등급’  
청도 풍각초, '1학기 현장체험학습’ 활동  
대구서부교육청, 신규공무원 현장 밀착형 멘토링 및 인사상담  
국립경국대·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고령친화대학 논의 본격화  
제호 : 세명일보 /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 223-59 (마지락길 3) / 대표전화 : 054-901-2000 / 팩스 : 054-901-3535
등록번호 : 경북 아00402 / 등록일 : 2016년 6월 22일 / 발행인·편집인 : 김창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창원 / mail : smnews123@hanmail.net
세명일보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세명일보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수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