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2 20:31:09

독일을 경제강국으로 만든 여섯번째 힘


세명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4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독일 경제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법률을 철저히 대하는 국민성이다. 독일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민법전이 오르기도 하는 나라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벽에 낙서가 잔뜩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서서 내려가던 두 아주머니가 하던 말이 기억난다. “저런 걸 처벌하는 법조항이 있을 텐데…(Es muss Paragraphen geben..)”
필자는 법질서의 수호자 독일 경찰의 진면모를 1987년 초가을 남부지방 여행 중에 경험할 수 있었다. 필자가 살던 뮌헨에서 베르히테스가덴은 약 세시간 거리다. 잘츠부르크행 고속도로를 따라가다가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이리저리 구경도 하며 첫번째 목적지 베르히테스가덴에 도착했다. 이 자그마한 마을은 1938년 9월 영국수상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주데텐 문제를 협상하던 바로 그곳이다.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알프스의 산지 사이로 깨끗하게 닦인 한적한 도로를 따라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그러던 중 독일-오스트리아 국경 세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거기서 한 독일 경찰관과 만나게 되었다.
경관은 내 여권을 체크한 다음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 국경에서 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한 적은 처음인데 아마 외국인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경관의 설명에 따르면 필자가 가졌던 국제면허증은 발급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유효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가 입국 사실을 조회해 본 결과 소지자가 독일에 유학할 목적으로 입국한 지 1년이 경과되었기 때문에 "외국인이라고 해도 운전면허에 관해서는 내국인으로 취급되어 반드시 독일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국제면허증을 한국에서 새로 발급받은 뒤 우편으로 전달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경관은 두꺼운 법전을 펼쳐서 조문을 찾아 보여주었다.
그 경관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기도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고 복잡한 관계규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직무상 어쨌든 무면허 운전처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조서작성을 시작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러면 이제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경관도 한참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는 몇 가지를 제안했다.
이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으나 마침 집에 없었다. 있었다 해도 그 먼 시골까지 누군가 또 한사람을 데리고(차가 2대이므로) 필자를 데리러 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는 표정이었으나 필자로서는 실행 가능성이 까마득한 무리한 계획이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고민하는 척도 하면서 시간을 끌어보기로 했다. 약 5분이 지나갔다. 그러자 그 경관은 마침내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어깨에 뭐가 많이 붙은 콧수염을 기른 다른 경관이 들어왔다. 그 경관은 자초지종을 들었다고 싹싹하게 말하고는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조용조용 말을 꺼냈다.
예의 그 경관이 필자의 차를 운전하고 뒤에는 그를 태워 돌아가기 위한 순찰차 한 대가 따라왔다. 경관은 필자를 길가의 그 식당 앞에 내려 주고는 뒤따라온 순찰차를 타고 서둘러 떠나버렸다. 식당 앞에는 노란색의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었다. 필자는 순찰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잘츠부르크 여행계획을 백지화하고 조심조심 뮌헨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에 바이에른 주의 검찰청에서 그때 있었던 무면허 운전 건은 ‘사안이 경미하므로’ 형사소송법의 관계규정에 따라 절차 진행을 중단한다는 통고가 집으로 날라왔다.
법률을 대하는 독일인의 진지한 태도는 독일을 강국으로 만든 여섯번 째 힘이 아니라 첫번째 힘일 수도 있겠다.

▲ 김 화 진 교수 / 서울대 법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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