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11-04 12:19:57

'프랑스 시위' 분노의 원인은 도처에 있다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김경태 기자 / 2421호입력 : 2026년 11월 04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URL복사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다. 자유·평등·박애를 국시처럼 내세우는 프랑스에서 또 다시 거대한 시민의 분노가 거리로 쏟아졌다. 처음은 학생들의 학교환경 개선 요구였다. 그러나 불씨는 교육에서 시작해 물가와 생활고로 이어지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다. 2026년 9월 17일, 파리 남동부 크레테유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 부족과 열악한 교육환경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학생과 학부모가 동참하면서 시위는 파리 외곽의 리옹, 마르세유, 낭트 등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시위는 사회적 불만으로 치솟는 생활비와 연료비, 청년실업, 공공서비스 축소,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하나의 거대한 저항으로 결집한 것이다.

10월 17일에는 전국에서 55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청사 방화, 상점 약탈,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발생했다. 파리에서는 시위 관련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국적으로 약 1,800명이 체포됐으며 경찰관 5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보도됐다.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적 피해도 커졌다. 10월 말까지 소요에 따른 소매업계 피해액은 10억 유로를 넘는다는 추산까지 나왔다. 10월 31일에도 전국에서 32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11월 2일에는 학교 방학이 끝나면서 파리와 마르세유, 렌 등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다시 이어졌다. 프랑스의 저항은 국경을 넘어 벨기에와 이탈리아에도 학생들의 연대 시위가 나타났고, 유럽 여러 지역의 청년 저항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시민의 불만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 민주주의가 직면한 공통의 위기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교육의 불평등이다. 프랑스의 공교육은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조건에 관계없이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공화국의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교사 부족과 낡은 학교시설, 과밀학급은 그 약속을 흔들었다. 둘째, 생활경제의 위기다. 물가와 연료비 상승은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줄이고 일상적인 생존을 위협한다. 셋째, 재정과 정치의 위기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의 약 119%에 접근했고, 재정적자와 저성장이 정부의 정책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 넷째, 정부의 대응 방식이다. 시민의 요구를 정책으로 수용하기보다 경찰력과 강경 대응을 앞세우면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프랑스는 시민의 분노가 역사를 바꾼 나라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 왕정과 신분제의 모순에 맞선 시민의 저항이었다.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은 왕정과 권력의 독점에 맞섰다. 1968년 5월 혁명은 학생들의 저항에서 출발해 노동자 총파업으로 확대되면서 프랑스 사회의 권위주의와 기성 질서에 저항했다 2018년에는 유류세 인상과 생활고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민의 고통에 대한 정부의 외면이 무서운 저항의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의 사태를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볼 수 없다. 우리 나라에도 시민의 불만을 키우는 요인은 도처에 있다. 대외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틈에서 안보와 통상, 기술,공급망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한미동맹과 대중 경제관계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도 국민의 불안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고도화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러시아 파병으로 실전 훈련을 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공급 부족, 규제의 잦은 변경, 세제와 대출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시장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감소 위기는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일자리, 경력단절, 돌봄 부담, 교육 경쟁과 함께 심화되고 있다. 노령화 대책도 노인 빈곤과 고독사, 만성질환, 돌봄 인력 부족이 동시에 악화되고 있다. 교육 양극화 역시 청년과 학부모의 분노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지역과 소득에 따라 사교육 접근성, 학교 교육의 질, 진학 기회가 달라지고 있다. 경제적 빈부격차도 외면할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산 보유자와 무주택자 사이의 격차가 고착화되고 있다. 지역불균형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로 나타난다. 일자리와 대학, 병원, 문화시설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청년이 지방을 떠나고, 지방의 인구감소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도 위험한 사태로 변할 수 있다. 선거 결과에 이견을 제기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동시에 선거관리의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청년들은 취업과 주거 문제로 좌절하고, 부모 세대는 자녀 교육과 노후를 걱정한다. 자영업자는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소비 위축으로 생존을 고민한다. 여기에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반복되는 정쟁,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면 시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한다. 공권력도 감당하기 어려운 저항의 불길이 광화문과 올공으로 번질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국민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는 정치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권은 시위대의 숫자보다 그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먼저 살펴야 한다. 시민의 분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외면당한 불만이 쌓이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반복되면서, 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비로소 거리의 함성이 된다. 프랑스의 시위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종이다. 정권의 책임은 거리에서 시민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분노한 청년들이 거리로 나올 이유를 없애는 데 있다. 민심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국정의 출발점이다. 청년들의 분노를 읽지 못하는 권력은 결국 시민의 저항과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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